[사설]만시지탄인 의대 ‘정원 1000명’ 확대, 의협은 수용하라
한국은 의사 부족 국가다.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넘쳐나고 의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병원 인프라도 충분하지만,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 있다. 정부·여당·대통령실이 15일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7년 만에 대폭 늘리기로 뜻을 모았다. 현재 고교 2학년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하고, 정원 확대 규모는 매년 수백명에서 1000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만시지탄이다.
그동안 의대 정원 확대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400명씩 10년간 늘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들의 집단반발로 물거품이 됐다. 의사 수 부족으로 응급실·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시스템은 붕괴 위험에 놓인 지 오래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10대 청소년이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후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전전하다가 구급차에서 숨졌다. 소아과의 잇단 폐업으로 대도시에도 어린이들을 치료할 병원이 부족하고, 지방 중소도시 공공의료원은 3억~4억원의 고연봉에도 의사를 못 구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최대 난관은 의협의 조직적인 반대다. 의협은 의료수가 인상 등 의사들이 특정 필수과를 기피하는 원인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의협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생은 인구 10만명당 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3.6명)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으로 OECD 국가 38개국 중 37위다. 의대 정원 확대는 국민의 생명·안전·건강과 직결되고, 국민 대다수도 찬성하는 정책이다. 제대로 된 의사 1명을 길러내는 데는 최소 10년이 걸린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점까지 감안하면 의대 정원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사 1인당 업무량이 지금과 같다면 2030년 1만4334명, 2035년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걸로 전망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기 바란다. 정부도 의협 의견을 경청해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차제에 의료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 의료 분야 100년 대계를 수립해야 한다. 대형병원 집중을 낳는 시스템을 개편하고, 건강보험 수가 조정 등을 통해 진료과목이나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며, 의사들의 수련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N수생 증가나 이공계 약화 등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교육·입시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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