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통가 해저 화산 폭발로 남극 오존층 ‘남한 260배’ 구멍
수증기 5000만t이 성층권 유입돼 남극 냉각, 프레온 활동 활발해져
언뜻 보면 배 위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회색 연기 같은 물질이 해수면에서 하늘을 향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지난해 1월15일(현지시간)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 해저에서 화산이 폭발한 모습이다. 막대한 양의 화산재가 하늘로 강하게 솟구치는 장면은 지구 상공 수백㎞를 도는 인공위성에서도 선명히 관측됐다.
통가 화산의 폭발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위력의 100배였다. 전력이 끊기거나 식수가 오염되는 등 피해가 생기면서 8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통가 전체 인구의 80%다.
통가 화산이 폭발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끝난 줄만 알았던 재앙이 실은 지구에 뜻밖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가 화산이 지구 남극의 오존층 구멍을 잔뜩 넓혀놓은 것이다.
■ ‘남한 260배 크기’ 구멍
최근 유럽우주국(ESA)은 지구 관측용 인공위성인 ‘코페르니쿠스 센티넬-5P’를 통해 남극 대륙 상공을 살핀 결과, 오존층 구멍이 이례적으로 넓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관측된 위성 사진을 정밀 분석했더니 남극 상공의 오존층 크기가 2600만㎢까지 확장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남한 면적의 무려 260배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다. ESA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남극 대륙 전체는 물론 주변 바다까지 오존층 구멍 안에 들어와 있다.
오존은 산소 원자 3개가 뭉쳐 만들어진 물질이다. 이런 오존의 집합체인 오존층은 전체 대기권(고도 1000㎞) 가운데 성층권(고도 10~50㎞) 구간에 존재한다.
오존층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자외선을 방어한다. 자외선이 빗물이라면, 오존층은 우산 같은 존재다. 다량의 자외선은 독성이 있기 때문에 오존층이 없다면 지구 생명체는 생존할 수 없다. 오존층이 부족하거나 사라지면 사람에게는 피부암이 다수 발생하고, 육지와 바닷속 생태계는 망가진다.
그런데 지구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염화불화탄소)’가 추위가 심한 남극에서 특히 강한 독성을 보여서다.
프레온가스는 에어컨 냉매 등으로 널리 쓰였다. 세계 각국은 1987년 프레온가스 사용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했고, 1989년 발효했다. 1989년과 비교해 현재 프레온가스 배출은 99% 줄었다.
이런 조치의 영향으로 1979~2021년 남극 오존층 구멍의 평균적인 크기는 대략 2100만㎢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ESA 관측 결과, 지난달 2600만㎢까지 넓어진 것이다. 오존층 구멍이 2840만㎢까지 이상 확장돼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2000년 9월과 맞먹는 수치다.
■ 화산이 뿜은 수증기가 ‘사달’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ESA가 지목한 유력한 원인은 통가 해저 화산 폭발이다. 지난해 1월 폭발한 통가 화산은 대기에 다량의 수증기를 방출했다.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며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물과 만났고, 이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수증기는 수십㎞ 고도로 치고 올라가 성층권까지 유입됐다.
기상 과학계에 따르면 당시 대기에 들어간 수증기 총량은 무려 5000만t이었다. 지구 성층권에 포함된 수증기를 5% 늘린 효과였다. 이 수증기는 대기의 흐름을 타고 남극 하늘로도 유입됐다.
ESA는 “수증기가 남극 성층권의 냉각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는 추울수록 더 활발히 움직인다. 안 그래도 추운 남극 성층권 기온을 수증기가 더 끌어내리면서 남극 오존층에 큰 구멍이 뚫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구는 괜찮을까. 몬트리올 의정서 발효 이후 오존층 구멍은 대체적으로 작아져 왔는데, 통가 화산 폭발로 인한 수증기 유입이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ESA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비관적인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프레온가스 배출을 전 세계가 몬트리올 의정서를 근거로 지금처럼 틀어막는다면 수증기 역할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대체로 과학계는 새로 대기에 유입된 수증기의 영향이 수년을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ESA는 공식 자료를 통해 “프레온가스 배출을 계속 억제한다면 남극을 포함한 지구 오존층은 2050년쯤에는 복구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ESA는“현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성층권에 이렇게 수증기가 많이 유입된 사례는 없었다”며 “남극 오존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숙면여대’…교수님이 재워주는 영상이 대박 난 이유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박근혜 정부보다 심각한 국정농단”…시국선언 전국 확산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