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강서구청장 선거의 세 갈래 교훈

박영환 기자 2023. 10. 15. 2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사실 결과는 뻔했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사면해 그 선거에 다시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오만함은 이미 패배를 예고했다. 안철수 의원의 여당 후보 지원 유세를 보고 한 시민이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했을 때 이미 선거는 끝났다. 그건 그저 야당 지지자의 비난이 아니라 다수 강서구민의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구청장 보궐선거 하나에 정치권 전체가 술렁이는 것은 내년 총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서울에서 치러진 마지막 민심 테스트에서 여야 격차가 17%포인트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여당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투표율은 48.7%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사전투표율이 22.64%로 역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통틀어 가장 높았던 것에 비하면 최종투표율은 예상보다 조금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한 데 비해 국민의힘 지지자 중 온건·합리적 보수 상당수는 투표를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큰 격차를 보면 무당층에서도 일부는 한쪽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이지만 대세가 형성될 정도는 아니다. 거대 양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만든 열기에 비하면 무당층의 표심은 여전히 냉랭했다.

강서구 보궐선거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처한 정치적 현실의 단편, 민심의 조각들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여야는 현실에서 교훈을 찾고 그에 기반해 6개월 뒤 총선에서 지지층을 지키고 무당층을 견인하기 위한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국민의힘에 주어진 교훈은 명확한데 실천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다. 이번 선거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무능, 이념적 편향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란 게 상식적 해석이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단 국회 인사청문회 중간에 자리를 이탈하는 기록을 세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등 여론을 살피기 시작했다. 또 여당을 향해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 인사를 앞세운 극우 성향 국정기조를 수정하고,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를 수평화하고, 공산전체주의 추종 세력이라고 비난해온 야당과 협치에 나설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변화의 주체를 당으로 설정하고, ‘차분한 변화’를 강조한 데서 이미 급격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읽힌다. 물론 절박함이 사람을 바꿀 수도 있으니 결과를 예단할 필요는 없다. 극적인 변화를 앞세워 전화위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이 얻을 교훈은 모호해 잘못된 해석에 따른 오답을 낼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의 승리는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쟁취한 게 아니다. 반윤석열 민심에 따른 반사이익이다. 지난 13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는 58%로 긍정평가(33%)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34%로 같았다. 무당층 비율은 26%나 됐다. 민주당의 경쟁력 부족, 매력 부재를 보여준다. ‘이재명 때리기’만으로 여당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게 증명됐을 뿐 이재명에 대한 비호감 여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주당의 교훈은 이재명 대표 체제로 ‘이대로만 가자’가 아니라 ‘경쟁력을 키우자’에 맞춰져야 한다. 외부 변수에 의해 주어진 승리는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이번 선거 승리가 민주당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팬덤정치에 의존하고 있는 이 대표가 무당파 유권자에게 소구할 통 큰 정치를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제3세력이 받아든 교훈은 너무 냉혹하고 암담하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며 대안정치를 내세운 세력들이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얻은 성적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정도로 미미하다. 정의당은 1.83%를 얻는 데 그쳤다. 제3지대 정당들의 득표율을 모두 합해도 5%가 안 된다.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은 무당파 유권자도 현재의 제3세력은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정치의 한쪽에서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이 자라나던 민주노동당 시절은 이제 옛날이야기로 남았다. 하지만 유권자의 3분의 1이 무당파인 점을 고려하면 제3정당에 대한 희망은 아직 접을 때가 아니다.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작지만 똘똘한, 키워주고 싶은 제3세력의 출현이 필요하다.

박영환 정치부장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