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수면 위의 수면

기자 2023. 10. 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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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홍제천을 산책하다
물결 속 바위 위에 잠든 청둥오리 가족을 본다

흐름에 몸 맡긴 고요한 풍경에도
선잠이 든 놈이 있다

두런두런, 허방을 짚는 발걸음에
고갤 쳐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살금과 슬금 사이의 불안한
수면 위의 수면

어둠과 수풀 너머 사냥의 본능
순간의 방심은 생의 목덜미에
송곳니

푸드득, 허공을 때리는 다급한 날갯짓

혹시, 문은 잘 잠갔나?
걱정이 두려움으로 몸 바꾸는

아내의 손이
흥건하다

김정수(1963~)

수면 위에서 수면 중인 물새들의 안부를 묻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함께 홍제천을 걷다가 청둥오리 가족을 만난다. 잠자는 오리들 가운데 ‘선잠’ 깬 어미 오리를 발견한다. ‘송곳니’를 숨기고 있을 천적으로부터 새끼들을 지키려는 어미 오리를 보자, 아내는 갑자기 두려움에 떤다. 아이들만 남겨놓고 나온 집 ‘혹시, 문은 잘 잠갔나?’ 눈앞이 흐려진다. 잠긴 문을 마구 거칠게 두드리는 바람이 아이들에게 온통 불어닥칠까봐.

물새들은 물 위에서 실눈으로 잠을 자거나, 강가에서 외발로 선 채 잠을 잔다. 위태로운 물 위의 잠. 그런 잠을 우리도 잔다. 서로의 물갈퀴로 상처를 내고 돌아와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한다. 안개처럼 희미한 내일을 잇기 위해 최소한의 잠만 잔다. 경계선 위에서 영혼의 반은 수면 아래, 반은 수면 위에 뜬 것처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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