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10월29일이면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1년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정부는 ‘신종재난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는 행정안전부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책임을 지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하자, 정부의 대응은 더 나빠졌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재난 첫 보고를 받은 뒤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징계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직후였다.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이 반복됐다.
위험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이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위험에 대한 예측이다. 현 정부 역시 두 참사에서 예측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시스템’의 문제이지 재난 앞에선 인간의 영역이 아닌 듯하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나 행사에서 압사 등의 사고는 늘 있어왔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압사의 위험을 느끼지 않은 시민들이 없을 정도로 압사의 위험은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다.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발생하는 지하공간 침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왜 하필이면 핼러윈 축제가 있었던 이태원에서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는지, 왜 하필이면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침수되었는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순간 재난은 도저히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우발적인 신의 장난질이 되거나, 하필이면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던 시민의 책임이 된다.
시민들이 압사의 불안을 이겨내고 매일 ‘지옥철’을 이용하는 이유는 위험을 즐기는 모험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충분히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기상청과 교통통제시스템, 지자체의 안전대책이 폭우 시 바다에 배를 띄울지 결정하는 것처럼 교통흐름의 통제 역시 이뤄지고 있다는 기대는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그 예측에 실패한 것은 시민이지, 정부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내거는 ‘국민안전’ 따위가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수많은 매뉴얼이 관료의 캐비닛 안에서 잠자고, 정교한 그물망처럼 연결된 ‘시스템’이 결국 말단 공무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것으로 ‘해결’되고 있는지를 모른 시민의 잘못이다.
‘시스템’이 있음에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위험은 증폭된다. 이태원 참사 원인 조사 따위는 필요 없다며 가볍게 패스한 이상민 장관이 주관해 마련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은 신종위험의 예측력을 강화하겠다는 온갖 대책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많은 대책들을 소화하려면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방안은 찾기 힘들다. 마치 기업의 책임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지우는 플랫폼 기업들처럼 지금 정부는 AI에 기댄 무인시스템을 꿈꾸는 듯하다. 실패와 책임, 애도의 정치적 행위 대신에 예측 불가, 작동 불능, 시스템 오류의 기계어를 반복하는 정부에 재난은 늘 새롭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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