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과목 없애고 상대평가는 유지 수능 개편안, 고교학점제와 '엇박자'
수능 영향력 커져 수업에 소홀
토론수업·서술형 평가 어려워
◆ 고교학점제 유명무실 ◆
2028 대입개편안(시안)은 내신에서 5등급 상대평가를 병기하고, 수능의 9등급 상대평가는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신과 수능이라는 입시의 양 갈래길에 상대평가를 모두 남겨두며 절대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고교학점제와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이번 개편안을 통해 수능 과목은 44개에서 24개(심화수학 포함 시 25개)로 줄이고, 통합 시험을 치러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를 완화하는 데 집중했지만 상대평가 부분은 유지했다. 내신에서도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되 상대평가를 병기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익명을 요구한 서울 고등학교 교사는 "적성과 진로에 따른 교육을 추구한다는 고교학점제 취지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면서도 "다만 대입이 목적인 상황에서 여전히 상대평가로 등수를 따져야 하고, 수능 비중도 줄어들지 않은 만큼 다양한 과목을 가지고 토론을 넣어 수업하고, 서술형 위주로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고등학교 내신에 절대평가만 적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를 병기한다는 점은 고교학점제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는 이처럼 상대평가를 병기하는 것에 대해 "고교학점제 내신 성적을 대학이 신뢰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대다수 학생이 진로·적성과 상관없이 내신에 유리한 다인수 과목을 선택해 고교학점제와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수능에서 절대평가 확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린 수업이 진행되기 어렵고, 여전히 문제 풀이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당장 수능에서 시험을 치르는 과목 수는 줄어들었지만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모두 공부해야 하고, 심화수학 등이 도입될 수 있어 그 부담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다.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서 변별력이 떨어진 만큼 수능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의견도 있다.
고교학점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교육부의 이번 개편안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3일 2028 대입개편안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대입만을 바라보는 경쟁 교육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고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형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기획국장 역시 "공정성 문제로 인해 50만명이 같은 과목으로 수능을 보면 모든 교육 과정이 잠식될 것"이라며 "정시 비율이 40%나 되기에 수능 과목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 수업은 대입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정상적인 고교학점제 시행이 어려워진 상황이라면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교육 파행을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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