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갈등 넘어 ‘행복한 동행’의 길로
갈등(葛藤)이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이 합쳐진 단어다.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처럼 뒤엉켜서 일을 풀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킨다. 생태계에서 칡과 등나무가 모두 필요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다양한 가치와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갈등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갈등이 없으면 사회는 퇴보하거나 획일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 정도가 관리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함께 무너질 수 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갈등도 변증법적으로 해석해 “기존의 틀과 제도에 저항하는 세력이 나오면 두 세력 간 충돌이 다시 하나로 뭉쳐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게 되므로 갈등은 미래를 향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갈등에는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도 있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은 패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서로 극복해서 제3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갈등 정도가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도록 한계치를 넘는 데 있다. 한국 사회는 이념·노사·계층·세대·남북·빈부·남녀·종교·다문화·지역 등 여러 부문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하다고 분석한 바 있다. 사회적 갈등에 따라 연간 최대 246조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과연 한국 사회에 대화와 타협, 배려와 양보가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도 소중하단 것을 알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 배려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천이자 동력이다.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빚어진 갈등은 해결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정치권의 이념논쟁이 극에 달해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어느 한쪽이 좋고 나쁘거나,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모두 장단점이 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합의를 도출하고, 국민을 화합시켜야 한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사 간 양보와 배려가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신바람 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선 노사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같이 배려하는 자세가 뒷받침돼야 한다.
교육계는 베이비붐 세대부터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특성을 가진 세대가 공존하고 있어 교육 이념과 가치관에서 어느 정도의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생 인권과 교권 사이 불거진 갈등은 매우 우려스럽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공존하고 서로 존중하며 동행해야 한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나오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된다. 갈등이 적정 수준을 넘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상황에서 이를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국가와 사회, 개인의 행복에 커다란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통과 공감, 배려와 양보, 대화와 타협은 선택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이를 통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며 함께 나아가는 ‘행복한 동행’이 되어야 한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갈등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의 지혜를 발휘해야만 한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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