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무산된 ‘통합’의 호주… ‘원주민 인정’ 개헌안 부결

서필웅 2023. 10.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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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애버리지널)과 토레스해협 도서민들을 호주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호주 헌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지금도 원주민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데 개헌을 통해 이들을 대변하는 헌법기구까지 생기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호주 내 많은 이민자 사회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여기에 강성 원주민 권익단체들마저도 개헌이 결국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반대해 끝내 헌법 개정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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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년 동안 대륙에 거주 했지만
호주 최초 국민으로 인정 못받아
‘보이스’로 명명된 대변기구 추진
2022년 노동당 집권 초기 80% 찬성
낮은 이해도·역차별 여론에 발목
추진 총리·집권당 등 타격 불가피

호주 원주민(애버리지널)과 토레스해협 도서민들을 호주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호주 헌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호주 ABC방송 등에 따르면 개표를 77.3% 끝낸 15일 오후 4시10분(현지시간) 현재 60.5%가 개헌에 반대해 39.5%인 찬성 의견을 앞섰다. 주별 개표 결과로도 6개주 모두 반대가 50%를 넘겼다.
침통한 찬성파 호주 원주민 권리 확대를 위한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가 치러진 14일 시드니에 모인 개헌 찬성파 시민들이 부결 쪽으로 기운 개표 결과를 바라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드니=AFP연합뉴스
투표가 의무인 호주에서는 전국적으로 투표자 과반이 찬성하고 6개주 중 4개주에서 과반 찬성이 나와야 개헌안이 가결된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투표일인 전날 개표 도중 “이번 투표 결과를 전적으로 존중한다”면서 이미 부결을 인정했다.

개헌을 위한 이번 국민투표는 집권 노동당이 지난해 5월 총선에서 내놓은 공약이다. 호주 원주민은 무려 6만년 동안 호주 대륙에 거주했지만 호주 헌법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심지어 헌법 제정 당시에는 원주민을 사람이 아닌 ‘토착 동물’로 취급하기까지 했다. 주인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런 영향으로 전체 인구의 약 3.2%를 차지하는 호주 원주민들은 현재도 호주의 대표적인 사회·경제적 약자층에 머물러 있다. 개헌 추진 당시 앨버니지 총리를 비롯한 개헌 지지자들은 헌법 개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원주민 생활을 개선하고 국가통합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노동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했을 때만 해도 찬성 지지율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1년6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뒤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외신들은 유권자들의 낮은 관심과 이해도가 여론 반전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국민투표 시행 결정 이후 반대파는 ‘보이스’라고 명명된 원주민 대변 헌법기구가 법적 권한이나 기능이 명확하지 않다고 ‘모호성’을 부각시켰다. 미국 CNN방송은 선거 캠페인 기간 반대 진영이 “모르면 반대표를 던지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면서 원주민 현실과 개헌 내용에 무관심한 여론이 방향을 틀었다고 밝혔다.

지금도 원주민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데 개헌을 통해 이들을 대변하는 헌법기구까지 생기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호주 내 많은 이민자 사회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진 잘못된 정보가 유권자들의 이런 인식을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강성 원주민 권익단체들마저도 개헌이 결국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반대해 끝내 헌법 개정이 무산됐다.

개헌 무산으로 노동당과 앨버니지 총리는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개헌을 둘러싸고 호주 여론이 극단적으로 갈리며 앨버니지 총리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내리막을 탔고, 급기야 지난 8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취임 뒤 최저치인 45%를 찍었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2026년 총선에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벌써부터 나온다. 앨버니지 총리가 “우리나라의 화해를 위한 길은 종종 험난했다”고 대안 마련을 시사했으나, 극렬하게 갈린 여론이 쉽게 봉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 탓이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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