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프로 연구원을 위한 프로 R&D시스템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안 감축 관련 논란이 많다. 필자도 기자들을 만나면 이와 관련된 난처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정치권에서의 지적대로 R&D 예산 감축에 따라 과학기술계의 어려움도 예상되나, 정부의 설명대로 R&D 예산에 비효율이 있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R&D 예산 감축에 따른 소모적인 공방이 지속된다면 정부는 물론 과학기술계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제에 정부와 산·학·연 연구기관, 연구자 각자가 비효율을 찾아 걷어내는 기회로 활용하였으면 좋겠다.
필자의 시골집 자그마한 정원은 풀이 반이다. 주말마다 찾아가 정성을 기울여도 꽃은 풀에 치여 늘 시들하다. 지난 겨울 넉넉히 뿌린 퇴비는 당장은 꽃보다도 빨리 자라는 잡초에 더 도움이 되었나 보다. R&D 예산도 이처럼 관리가 안 되면 잡초 같은 비효율이 쌓이게 된다. 이러한 비효율은 R&D 예산 배분, 관리 및 평가체계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시스템적 요인이 크다. 정말 비효율적인 것이 무엇인지 꼼꼼히 찾아서 없애야지 섣불리 손댔다간 엉뚱하게도 비효율은 못 잡고 약한 고리인 미래인재(인턴, 석·박사생, 박사후과정 등)에게로 불똥이 튈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답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고 분석해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자동차와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이다. 우리 기업들은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뛰고 있다. 대학과 출연(연)도 기업처럼 이러한 절박함으로 무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출연(연)은 SCI 논문과 장롱 특허만 양산하는 애매한 연구가 아닌, 원천성이 아주 높거나 실용화·상용화가 확실한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설립 목적에 맞고 수요가 분명한 곳에 자원을 집중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분야는 도태시키는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 연구를 업으로 하는 출연(연)에는 매 순간 연구에 진심인 프로 연구원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 연구원들이 프로답게 뛸 수 있도록 프로 R&D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프로 선수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능력과 성적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을 받으므로 최선을 다한다. 기관 차원에서는 프로 스포츠팀처럼 연구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연구만 하면 되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프로 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출연(연) R&D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출연(연)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기관 고유사업 운영에 대한 자율과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이 사업만이라도 기술환경 변화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출연(연)이 R&D 효율화에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2021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총 세부과제 수는 7만4745개로 정부 부처와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 출연(연)만이라도 예산을 쪼개주지 말고 기관 차원에서 총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패키지로 지원한 후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살기 위해 먹던 시대는 끝났다. 무조건 밤을 새워 일하고 연구하라고 부추기던 시절도 지났다. 먹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식인 시대이다. 연구 자체가 신성한 의식이 되도록 연구원에게 몰입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국제협력·융합연구가 대세가 되도록 제도를 획기적으로 고쳐야 한다. 외국에 단순하게 위탁하는 협력이 아닌 우리가 선도하는 국제협력연구를 많이 발굴해야 한다.
풀만 무성했던 필자의 시골집 정원에도 시간이 지나자 꽃들이 하나둘 살아나 어느덧 풀 반 꽃 반으로 변했다. 조동화 시인은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풀밭으로 남을 것인가, 온통 꽃밭이 될 것인가는 결국 나 하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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