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인상 실기론 대두] 구조조정은 남일?… 정치탓·립서비스만 `남발`하는 이창용
IMF·WB 연차총회 모로코 현지간담회서 밝혀
"금리 인상·구조조정 시기 놓쳤다" 비판론 거세
19일 금통위도 금리 동결 가닥… 6연속 동결할 듯
이창용 한국은행(한은) 총재가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2%대 성장세를 이어가야 한다며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모로코 마라케시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그러면서 "구조개혁을 하면 2%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원론에선 옳지만 한은 자체가 기준금리를 지나치게 낮게 유지해 우리 경제의 부실 부문을 도려내지 못하고 있는 점은 도외시한 것"이라며 "정치권 탓만 하고 말로만 립서비스 하는 건 아니냐"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구조 개혁, 정치에 달렸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현지 시간) 기자간담회에서 "인구구조 트렌드를 보면 2% 정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화 때문에 점차 더 낮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한국이 3~4% 성장률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미국도 2% 성장하는데 '일본처럼 0%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소극적인 견해"라며 "노동시장이라든가 경쟁 촉진, 여성 및 해외 노동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개혁하면서 장기적 목표를 2% 이상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성장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재정으로 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사안마다 이해당사자가 다른데, 구조개혁을 하면 2%로 올라가는 것이고 그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IMF 아·태국장으로 재임할 때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재정·통화정책보다는 근본적으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설파해왔다.
오는 19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통화정책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 총재는 "물가 전망의 베이스라인은 올해 말 3% 초반, 내년 말까지는 목표 수준(2%)에 근접하게 내려갈 것으로 보면서 정책을 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선 "유가 요인들을 봐야 하는데, 금통위원들 결정에는 곤혹스러운 팩트일 것"이라며 "갑자기 터졌으니 새로운 자료를 다시 봐야 한다. 당연히 이란뿐만 아니라 어려운 문제가 많다"며 구체적 언급을 꺼렸다.
고금리와 관련해선 "미국이 정책금리를 안 올렸음에도 장기금리가 확 오르면서 충분히 긴축효과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일부의 얘기도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미국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고 상반된 시각을 소개했다. 이어 "환율이나 시장가격 변화를 보면 미국이 한번 더 금리 올리는 가능성에는 시장이 어느 정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9일 금통위서 '금리 동결' 무게
19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선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5.25~5.50%포인트)과의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2.0%포인트에 이른다. 한은이 이번에도 금리를 유지할 경우 '6차례 연속 동결'이 된다. 한은은 지난 2월에 이어 4월, 5월, 7월, 8월에 금리를 동결한 바 있다.
치솟는 물가 상승률, 가계대출 증가세 등 기준금리 인상 요인은 충분하다. 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는 더 악화되고,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커져 금리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발 가파른 금리 상승에 따라 금융시장 불안이 높아진 만큼 추가 통화 긴축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금리 동결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부실 키우고 구조조정 늦추는 한은
이에 대해 한은이 금리를 올려야 할때 올리지 못함으로써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금리를 올려야 할 시기에 올리지 못함으로써 향후 경기 악화시 정책 대응 여지를 좁혔다는 주장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예전의 두배 이상 수준이다. 외식비 공공요금 공산품가격 등 안오른게 없다. 지난 7월 2.3%(전년 동기 대비)로 내려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3.7%로 다시 상승 폭이 확대됐다. 한은의 주요 책무인 '돈값(원화가치) 안정'에 실패한 것이다.
게다가 가계부채는 다시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079조8000억원으로 8월보다 4조9000억원 늘었다. 6개월 연속 증가세로, 잔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한은은 이달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다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거시 경제의 3대 목표인 △꾸준한 성장(일자리 증대) △물가 안정 △국제수지 안정을 한꺼번에 달성할 '마법의 정책 도구'는 없다. 한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른 목표를 희생(트레이드 오프)해야 하는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를 억제하려면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그래야 효율이 떨어진 부실 기업과 부실 부문을 구조조정하고 경제에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창용 총재는 구조조정의 책임을 정치권에만 돌린채 느슨한 통화정책의 폐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이 경제주체들의 희생을 요구해서 일 것이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앞으로도 계속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하기를 권고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직 인플레이션이 높은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얘기"라며 "원자잿값 상승이라든지 여러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아직은 금리를 섣부르게 낮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렸어야 했다"며 "시장이 현 3.50% 금리에 적응하는 분위기가 이어져왔음에도 한은은 동결을 지속해온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추가 금리 인상이 경제 충격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물가가 오르는) 이 상태로 기준금리를 지속하기는 힘들 수 있다"며 "금리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밝혔다.
강현철·이미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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