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이스라엘 비극의 교훈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래 이스라엘은 한국 안보의 모범 사례였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3억 인구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생존,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를 착실히 일구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일 안식일에 발생한 청천벽력 같은 비극은 그림의 반대편을 보여준다.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5천발 이상의 로켓 발사를 필두로 육상·해상·공중에서 이스라엘 영토에 침투해 무고한 시민 1천여명을 무참히 사살하고 2400명 이상을 다치게 했다.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보복 반격과 전방위 폭격으로 하마스 무장대원 1600명이 사살됐으며, 가자지구 주민 희생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응징 의지로 보아 가자지구의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참극이 없다.
세계 최고 정예군과 정보 능력을 갖춘 이스라엘이 이집트도 아닌 일개 무장정파 하마스에 이렇게 당했다는 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정보 실패였다. 이스라엘군(IDF)은 하마스의 의도와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내부의 정치적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공세적 행동을 자제하거나 혹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응징이 두려워 대규모 공격을 단념했다는 정보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변에 있던 병력 일부를 소요가 일고 있는 유대-사마리아 쪽으로 이동한 것은 그 방증일 수 있다.
7년 전 필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인적 정보(휴민트), 영상정보 그리고 신호정보의 융합을 통해 하마스 쪽 동향을 24시간 감시해 아이언돔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특히 하마스가 하루에 5천발 이상의 카삼 로켓을 발사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수만발 이상 비축 물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모사드나 아만(국방정보본부)이 이러한 물량의 생산과 배치에 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해 선제적으로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정부의 적대적 압박 정책도 한몫했다. 세종시와 유사한 면적의 가자지구에 220만명이 거주한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 가운데 50%가 실업자다. 더욱이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어 이스라엘 정부 발급 통행증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고, 수도·전기·식량의 유입도 통제되고 있다. 지구 위에서 가장 큰 ‘창살 없는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봉쇄 압박 정책은 하마스의 정치 기반을 강화했고, 이번 사태와 같은 거의 극단에 가까운 비인간적 도발로 나타났다. 출구 없는 일방적 압박이 빚어낸 불행한 결과다. 물론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하마스와의 협상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평화적 해법을 모색했다면 상황이 과연 오늘과 같았을까.
문제의 또 한축은 정치의 실패다. 어렵게 보수연정을 구성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7월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혁법안'을 추진하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했다. 시민들의 저항은 거셌다. 30만 넘는 이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항의시위를 이어가고 예비군 1만여명이 독재체제로 향하는 정부 아래서는 복무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군의 준비태세에도 차질을 가져왔다. 이러한 이스라엘 국내 정치적 양극화와 정정 불안이 하마스의 군사모험주의를 부추겼을 가능성이 크다. 독선과 오만으로 일관해온 네타냐후 총리와 가자지구를 지도에서 없애자거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서슴지 않고 주장해왔던 일부 보수연정 구성원들은 이번 비극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의 참극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명백하다. 정보 체계와 3축 체계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평양은 언제든 작은 틈새를 이용해 우리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북한의 내부 붕괴 가능성에 기대는 일방적 압박 전략은 격렬한 반발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북한은 일개 무장정파가 아니라 핵 능력을 보유한 위협 세력이다. 그리고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 편가름의 정치는 결국 내부 단합을 해쳐 국가 안보에 독소가 될 뿐이다. 우리의 적대 세력은 우리의 분열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전쟁의 예방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 소중하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킨다. 숱한 무고한 생명을 부질없게 희생하고 난 뒤 승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독단과 오만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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