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순간마저 아름다운 몸짓으로 빚었다

2023. 10. 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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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장 크리스토프 마요의 '발레 매직'
모든 배역 감정과 캐릭터 잘 살려
긴박한 장면 슬로 비디오로 표현
미니멀한 무대에 화려한 조명
고전과 현대美 살린 의상도 일품
지난 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솔 기자


건물 사이에 이어진 줄 위로 천 조각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이승택의 ‘바람’이란 설치미술 작품이다. 그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란 첫 구절로 유명한 유치환의 시 ‘깃발’을 떠올리게 된다. 형체 없는 자연 현상이 과연 조형화되고 미술이 될 수 있을까. 소리가 없는데 아우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우리는 ‘역설’이란 단어를 읽는다. 일상의 감각 안에서는 전혀 연결될 수 없는 지점이 예술 안에서 경이로운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온통 아름다운 역설이 가득했다. 이 작품은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장 크리스토프 마요가 안무를 맡았다.

‘기술이냐 표현이냐’라는 예술가들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숙제를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완전한 합일로 풀어낸다. 이 지점에서 역설의 미를 읽어낸다. 마요는 “제 작품들은 안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이런 말이 무색하게 기술적인 역량에서 무대에 선 어느 무용수도 제외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작품의 주변 인물로 밀어내지 않고 각자의 감정과 캐릭터를 살려낸 점은 특별했다.

그 어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적극적인 유모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로미오의 친구들을 통해 짓궂은 10대 소년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견한다. 두 젊은 연인의 시신 앞에서 로런스 신부가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이 죄책감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고 앞으로 살아갈까 연민을 품게 된다. 기술을 추구하거나 보여주는 데 방점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동시에 감정선 안에 완전하게 녹아 있는 그 기술들에 혀를 내두르다가 역설의 매력에 휘말린다.

정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죽음의 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가장 큰 역설이다. 티볼트가 죽는 순간은 어떤가. 긴박하고 숨 막히는 그 순간의 역동성을 슬로 비디오처럼 연출해 무거운 침묵으로 이끌어낸다. 관객은 입을 틀어막고 타악기의 강한 타건 안에 자신의 심장박동수를 맞추게 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영화적 기법을 적용했다. 각각의 장면을 로런스 신부의 회상과 시각을 통해 이끌어 가는 점이 특히 그렇다.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의 갈등과 다툼,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 결혼, 두 연인이 어긋한 신호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 장면은 로런스 신부가 통탄과 울음 안에서 과거를 되짚어보는 상황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장면은 한 장의 그림처럼 멈춰선다. 그때 고전과 현대의 미를 조화시킨 제롬 카플랑의 의상은 그림 같은 미장센을 완성하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한다.

조명 디자인도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어떤 장식도 없는 백지상태의 무대세트를 세운 건 간결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접근이지만 그 위에 입혀지는 조명은 미술적 색채와 감각을 끌어내 역시나 역설의 코드를 읽게 한다. 작품을 보는 내내 비울 때 채워지고, 놓을 때 잡게 된다는 지혜를 마주하게 된다.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강력한 끈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안무가가 자신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면서도 음악만큼은 바꾸지 않는 건 그 음악이 지닌 미적 매력이 대단해서다. 발레 음악에 애정이 깊은 프로코피예프는 이 곡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음악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다. 이 음악에 로런스 신부의 회상을 ‘움직이는 내레이션’으로 덧입힘으로써 마요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몬터규와 캐풀렛 두 가문이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이 비극인가, 희극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결말이다. 그동안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안무가마다 자신의 철학이 담긴 마무리를 보여줬다.

존 크랭코는 두 사람이 포개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사랑이 맺어지는 결말을, 케네스 맥밀런은 끝내 연인의 손을 잡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비극의 절정을 보여줬다. 마요는 두 젊은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로런스 신부의 통탄으로 막을 내리게 함으로써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사랑은 이래저래 거부할 수 없는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우리 모두가 가진 이 감정과 기억을 상기시키고 하나로 묶었다.

이단비 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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