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있는 변화' 나선 與 …'친윤' 먼저 총대 멨지만 여진 지속
이철규·박성민·박수영…
친윤 핵심 대거 2선 후퇴
통합형 당직으로 개편 추진
수도권·충청 인사 전진배치
최재형 "국민 눈높이 안맞아"
김기현 "총선패배시 정계은퇴"
주말 사이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에 따른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선출직을 제외하고 임명직 당직자를 전원 교체하는 '깜짝 카드'였다. 이에 대해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질서 있는 변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궐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실 참모진에게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추진하자"고 발언한 것과도 맥락이 통한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과 같은 충격요법을 택하는 대신에 핵심 당무를 보좌하고 총선 전략을 수립할 임명직에 대해 큰 폭의 인적 쇄신을 단행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사퇴한 당직자 면면을 살펴보면 변화폭이 작지 않다. 이들은 임명직이란 점 외에도 당내 대표적인 '친윤(친윤석열)계' 인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 물러난 이철규 사무총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배현진 조직부총장 등이 모두 핵심 친윤계로 불렸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색채가 옅다는 평가가 있으나 역시 친윤계로 분류된다.
정치권에선 이들의 '2선 후퇴'에 대해 김기현 대표가 주도권을 쥐고 쇄신안을 추진해 총선 체제를 갖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으로 해석했다. '당 지도부가 대통령실의 지침을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잠재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국민의힘은 '1기 지도부'와 비교해 영남·친윤 비중이 확연히 줄어든 '2기 지도부'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5일 오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 후 브리핑에서 "김기현 대표가 통합형 당직 개편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이를 통해 당과 정부의 소통을 강화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통합형 당직 개편에 대해 "수도권·충청권 인사를 전진 배치하는 형태로 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총선을 겨냥한 공약·정책 발굴 방향도 정해졌다. 윤 원내대표는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받들어 변화와 쇄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로 했다"며 "민생 경제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특히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혁신기구·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고, 인재영입위원회를 구성해 당 분위기 쇄신을 도모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수습책을 놓고 당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려 터져나왔다. 이날 열린 의총은 20여 명 의원이 '총선 대비책'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5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초선 최재형 의원은 의총 참석에 앞서 페이스북에 "임명직 당직자 사퇴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국민이 내린 사약을 영양제나 피로해소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의총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5선 중진인 서병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김 대표는 대통령실만 쳐다볼 게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전달할 결기가 있는가"라며 "그럴 각오가 없다면 물러나라. 집권당 대표라는 자리는 당신이 감당하기에 버겁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웅 의원 역시 '대표 사퇴론'을 지지했다. 김 의원은 "국민은 바꾸라고 하는데 바꾸지는 않고, '단결만 하자. 우리는 다 잘했다'라는 말만 할 거면 뭐 하러 의총을 하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 대표와 불편한 관계인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패전의 책임은 장수가 지는 것"이라며 "부하에게 책임을 묻고 꼬리 자르기를 하는 짓은 장수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공세를 퍼부었다.
반면 이른바 단계적인 수습을 선호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윤상현 의원은 의총 도중 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화두는 변화와 혁신이지, 단결이냐 분열이냐가 아니다"며 "김 대표의 사퇴보다는 비대위에 준하는 혁신위원회를 발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인식 못 하는 의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수도권에서 지역·연령·계층별 정밀 여론조사를 실시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당이 어려울 때일수록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고 단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앞서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당이 어려울 때 수습할 생각을 해야지 다 나가라고 하면 누가 수습하느냐"며 "임명직 당직자들이 일괄 사퇴까지 한 마당에 당 원로가 초를 치는 건 보기 민망하다"고 지적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당정 갈등을 부추기는 게 쇄신은 아니다"며 "이때다 싶어 대통령을 흔들고 본인들의 공천 기득권을 확보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국민과 당원들이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당내 여론을 의식한 듯 김 대표는 의총 마지막 발언에서 "총선서 국민의힘이 이기는 것에 모든 걸 걸겠다"며 "지면 정계은퇴로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보궐선거 패배 후폭풍이 진행되는 와중에 국민의힘은 16일부터 약 2주간 당무감사에 돌입한다. 2020년 이후 3년 만에 시행되는 당무감사를 통해 국민의힘은 의원들의 총선 경쟁력을 평가하게 된다. 주요 평가 기준으로는 지역 활동, 당원 증감률, 당 기여도 등이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단행한 임명직 당직자 교체에 대해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책임 회피'"라고 평가절하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기현 대표는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윤석열 대통령과 직통 핫라인이 있는 후보'라고 강조했다. 국민을 모독해 놓고 참모들 뒤에 숨어 있느냐"며 "국민께 사과하라"고 말했다.
[이유섭 기자 / 안정훈 기자 / 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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