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 화백 별세]한국 추상미술 주도···'묘법 단색화'의 세계적 거장

서지혜 기자 2023. 10. 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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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간격으로 수행같은 선긋기
시대와 교감하며 끊임없이 진화
세계 미술관들 朴화백 작품 소장
"캔버스에 한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
폐암3기 투병중에도 왕성한 활동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서보 화백의 빈소에서 방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박서보 화백
[서울경제]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습니다.”

올해 2월 박서보 화백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게시글에서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다짐한 대로 그는 8개월여간 온 힘을 다해 선을 긋고 전시회를 열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14일 오전 평생을 바친 선 긋기를 내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향년 92세.

박서보 화백의 생전 모습. 사진=박서호 화백 페이스북.

1931년에 태어난 고인은 김환기·김창열 등과 동시대에 태어난 국내 근현대 미술 작가로 문화 불모지인 한국 미술계에 추상미술을 도입하고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거장이다. 그는 1950년 홍익대 미술과에 입학했고 1962년 홍익대 미대 강사로 시작해 1997년까지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1957년 한국 앵포르멜(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 사조) 운동을 주도한 현대미술가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961년에는 세계청년화가파리대회에서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토대로 한 ‘원형질’ 시리즈를 선보인 바 있다.

박 화백의 작품 세계는 ‘묘법(描法·Ecriture)’과 함께 절정에 이른다. 묘법은 캔버스에 동일한 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긋는 수행에 가까운 작업이다. 전기 묘법 시대(1967~1989)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후반의 묘법은 밝은 회색을 입힌 캔버스에 연필로 선을 긋는 작업이었으나 1982년 이후에는 한지를 풀어 여러 겹 화폭에 올리고 이를 자나 막대기 등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작품에 유채색을 다양하게 포함하는 등 진화를 거듭했다. 고인은 항상 제자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고 조언했는데 이 같은 조언이 자신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2021년에는 한국 작가 최초로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협업해 자신의 작품이 적용된 가방을 내놓는 등 변화하는 시대와 교감도 이어갔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091226’. 사진 제공=조현화랑

그의 작품은 2015년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열린 ‘단색화’전이 해외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세계적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1976년작 ‘묘법 No. 37-75-76’은 2018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 달러(약 25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현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이 박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생전 고인은 자신의 선 긋기를 ‘수행의 도구이자 비워내는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일까.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를 원망하기보다는 새롭고 진취적인 작업에 몰두했다.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제주 서귀포시 JW메리어트제주리조트&스파호텔 부지 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첫 미술관 ‘박서보 미술관(2024년 7월 완공 예정)’건립 을 추진하고 올해 8월에는 부산의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미술계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친구이자 2021년 별세한 김창열 화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을 종종 게시하기도 했다.

하종현 화백이 자신의 SNS에 공개한 원로 작가들의 모습. 하종현 화백 SNS
고(故) 박서보 화백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이렇듯 암 투병 중에도 왕성한 활동을 한 만큼 그의 타계 소식에 미술계에서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첫날부터 주요 미술계 인사들과 작가, 해외 큐레이터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박 화백은 단색화의 거장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었다”며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그림 작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하종현(88) 화백은 이날 자신의 SNS에 “오랜 동료로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여러 장의 젊은 날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빈소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 문화계 인사들의 조화도 눈에 띄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파크.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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