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돈 털어 빚갚는 기업 … 채무상환 유증 올 2배 '쑥'

김정석 기자(jsk@mk.co.kr) 2023. 10. 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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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에 대출 상환용 1.6조
회사채 발행금리도 치솟자
유상증자로 자금조달 쏠려
투자자에 피해 전가 비판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서 회사 채무를 갚기 위해 진행하는 유상증자가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뛴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불경기에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앞다퉈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올해 초부터 이달 12일까지 공시한 채무 상환 목적의 유상증자 총금액은 1조2885억원으로 집계됐다. 유상증자를 철회한 사례는 제외한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공시한 채무 상환용 유상증자 총금액은 6633억원으로 올 들어 그 규모가 약 두 배(94.26%) 늘었다. 이 기간 전체 유상증자 총금액이 9조5478억원에서 7조8674억원으로 줄어든 가운데 채무 상환용 유상증자 규모만 큰 폭으로 커진 것이다. 코스닥의 채무 상환 목적 유상증자를 합하면 올 들어 같은 기간 1조6274억원으로 지난해(9169억원)에 비해 77.49% 증가했다. 코스닥만 보더라도 같은 기간 공시한 채무 상환용 유상증자 규모가 지난해 2536억원에서 3389억원으로 33.64% 늘어났다.

올 들어 '빚 갚기' 유상증자 규모가 크게 증가한 배경으로는 국제적 긴축정책에 따른 고금리 기조 장기화가 꼽힌다. 고금리 국면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기업들이 대출을 상환해 이자 부담을 덜고자 앞다퉈 유상증자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금리 상승 등 영향으로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자 유상증자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가파른 금리 상승 분위기에 기업들이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해 부채 줄이기에 나섰고, 그 일환으로 채무 상환용 유상증자도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불경기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또 다른 이유로 지목됐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밋밋한 경기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나라 상장 제조업체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라며 "주주들의 힘을 빌려 재무 개선에 나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돌파구로 삼으면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유상증자로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면 주식 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빚 갚기' 유상증자는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악재로 여겨져 주가 급락으로 연결된다. 시장에서 유상증자를 기업 재무의 '빨간불'로 인식하는 탓이다.

실제로 올해 채무 상환 등 목적으로 조 단위 유상증자를 결정한 SK이노베이션과 CJ CGV는 떨어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6월 23일 1조14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당시 유상증자 조달 금액 중 30%가량인 3500억원을 채무 상환에 쓰겠다고 알리자 주가가 급락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이 채무 상환 비중을 줄이고 조달한 금액 대부분을 신사업 투자 등에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반등해 지난 7월 장중 21만원을 웃돌기도 했으나, 하락세에 들어선 주가는 이달 13일 그보다 30%가량 떨어진 14만7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 20일 유상증자를 발표한 CJ CGV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CJ CGV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5700억원, 제3자 유상증자에 단독 참여하는 CJ로부터 감정 가치 4444억원인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전량을 현물출자 받기로 했다.

지난 13일 CJ CGV 종가는 5220원으로 유상증자 발표일인 6월 20일 1만131원에서 절반 가까이 미끄러졌다. 최근 법원이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면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또 주가가 내려가면서 신주 발행가가 낮아 공모자금 규모 자체도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빚 갚기'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당초 계획한 3800억원마저 225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미국 애플 등 기업은 주주 환원이나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주는데, 대출을 갚겠다며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면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유상증자한 자금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사용했느냐가 주가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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