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우리는 다르다,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
좀 속되지만 귀에 '쏙' 들어와 정치판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머리 들면 한 방에 '훅' 간다."
오만하게 잘난 체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인데, 특히 선거에서 딱 그렇다. 오만하면 '무리'를 하게 된다. 제3자의 눈으로 상식적으로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인데도 우리는 다르다, 이번엔 다르다고 믿으면서 기어코 밀어붙인다. 문제는 유권자들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무리수를 딱 부러지게 혼낸다는 거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판을 키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파장이 굵다. 더불어민주당은 두 자릿수 격차로 이겼으니 압승이다. 이재명 대표발 위기로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던 당으로선 마른 땅에 오른 셈이다. 여전히 지지고 볶을 일이 즐비하긴 해도 일단 한숨은 돌렸고 기력을 보충했다.
국민의힘은 차라리 후보를 안 내느니만 못한 결과를 받았다. 애써 긍정의 의미를 찾자면 여당과 대통령을 바라보는 지금 민심이 어떠한지 확인했다는 정도인데, 그걸론 패배의 뼈아픔이 도통 줄지 않는다. 돌아보면 무리수 시리즈다. 원래 여당에선 이번 보궐선거에 무공천할 생각이 있었다. 험지인 데다, 원인 제공 정당은 무공천한다는 자체 원칙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를 뭉개며 후보를 냈다. 출마를 막는 당 규정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네, 이번엔 사정이 다르네 등 아전인수 해석이 따라붙었다. 첫 번째 무리수다.
여당 소속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은 유죄 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가 됐다. 그런데 판결 석 달 만에 대통령은 그를 사면·복권했다. 보선을 앞둔 시점이다. 여당에선 그가 공익신고자인데 법원이 무리한 판결을 뒀다, 현 사법부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두 번째 무리수다.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공천의 '신호'로 통했고, 결국 당은 김 전 구청장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로 정했다. 해볼 만하다는 '용감한' 판단과 함께다. 세 번째 무리수다. 차라리 연말 성탄절 특사 대상으로 삼았더라면, 보궐선거가 아닌 내년 총선에 공천했더라면 사정이 다르지 않았을까.
민주당은 이미 '무리수'로 심판받은 바 있다. 작년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패배였다. 당시 강서구청장 선거도 국민의힘에 빼앗겼는데, 그때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외이던 이재명 대표는 본인의 거주지인 성남 분당 지역을 떠나 인천 계양을에 출마했다. 험지를 회피하고 민주당 텃밭에 출마하는 무리수란 비판이 일었다. 그곳이 송영길 전 대표의 지역구라는 것도 뒷말을 낳았다.
또 2021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졌다. 원인 제공 정당이었고 무공천 원칙이 있었지만, 당원들이 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당시 국민의힘은 무공천 원칙을 어겼다며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선거에서 이기는 길은 당원과 지지자의 선택만으로는 안 되고 유권자 다수의 선택을 얻는 거다. 정당마다 이 길을 원한다고 말은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여당이 된 정당은 당원과 지지자의 선택만을 보면서 이번엔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는 착각에 빠져 무리수를 뒀다. 결과는 패배였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이 있듯이 지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우리는 다르다,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이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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