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축소 예산'으로 건전재정 가능한가

2023. 10. 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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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통한 건전재정 강조해도
세수 펑크에 재정적자 눈덩이
지출 줄이려다 민생예산 축소
조세부담률 적정화 나서야
경제 살리는 건전재정 가능

윤석열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는 한마디로 '긴축 재정을 통한 건전재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보면 '재정적자가 확대된 축소 예산'으로 나라 곳간도 씀씀이도 비상이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의 '건전재정'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라서 시시각각 밀려오는 해외 충격을 흡수하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건전재정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건전재정 의지는 크게 환영하지만, 문제는 재정적자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확정된 올해 예산을 보면 적자 규모가 58조2000억원(GDP의 2.6%)이고 국가채무는 66조7000억원 증가하는 적자 예산이다. 그러나 올해 8월 말까지 국세 수입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조6000억원이나 적게 들어와 올해 적자 규모는 예산보다 크게 늘어나서 80조원(GDP의 3.6%) 내외로 전망된다.

내년 정부예산안의 적자 규모는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내년 예산 규모가 올해 예산보다 겨우 2.8% 증가한 수준인데도 재정적자는 92조원으로 GDP 대비 3.9%에 달한다. 이는 현 정부의 재정준칙 상한 3%보다 크게 높다. 내년도 국가채무는 120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재정 규모 증가율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인데도 왜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할까? 세금을 적정 수준보다 적게 걷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세입 기반 확충 노력을 해야 함에도 지난해 대규모 감세에 이어 올해에도 감세법안을 제출했다. 내년 국세 감면액은 77조원으로 사상 최대이고 국세수입총액의 16.3%(법정 한도 14%)에 달한다.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조세부담률을 2022년 23%대에서 20%대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가 진정 건전재정 의지가 있다면 먼저 조세부담률부터 적정화(23~24%)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세금도 재정지출도 줄이는 '축소 예산'을 표방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구호로는 매력적이지만 국가백년대계를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재정은 건축물의 골조와 같다. 최근 아파트 골조공사에서 철근을 빠뜨려 지하주차장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재정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려 반드시 훗날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도 조세부담률과 재정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최하위 수준이고, 노인빈곤율은 가장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긴축' 프레임에 갇혀 내년 예산에서 민생과 복지예산 축소, R&D 예산 33년 만에 첫 감소, 지방재정 악화, 경기 위축을 초래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히 재정은 여유 있는 계층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소득재분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 사회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지출을 늘려 경제를 살려야 한다. 세금을 적게 걷어 적게 쓰는 저부담 저복지의 '작은 정부'는 이러한 재정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 중 저부담 저복지를 지향하는 국가는 없다.

해결책은 조세부담률의 적정화와 예산 규모의 현실화를 통해 재정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우리 수준에 맞는 '적정부담 적정복지'에 기반한 건전재정으로 나아가야 양극화 완화, 소비와 투자 진작, 성장 잠재력 확충 등을 통해 지속 발전할 수 있고, 저출생·고령화·기후위기 등 3대 현안 위기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보완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용섭 전 국회의원·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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