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대리운전자의 슬픔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0. 15. 17:36
돌아선 채 바깥을 향해 말려 있는 바짓단을 본다
타인의 거처에 닿아
또 다른 타인의 거처로
거기서 다시 처음 보는 사람의 집으로
몇 번을 거듭해 온 젖은 흔적들
취객이 조수석 창문을 조금 내리더니 뭐라고 외친다 어떤 말은 듣고 어떤 건 휘발되게 둔다 그 말들이 가슴에 못 스며들도록 다음 고객을 상상한다 이 취객보단 조건이 좋은 어떤 고객을
연극 무대에 대역 배우로 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스쳐 갈 때마다 우는 배역이었다 - 최세라 作 '대리운전' 중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는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일까. 참 기구하면서도 희생적인 직업이다. 누군가의 거처에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길 한가운데 섰을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바짓단이 마를 날이 하루도 없을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연들에 젖었을 테니 말이다. '대리운전'자의 운명을 비유한 마지막 두 행이 정말 압권이다. 그렇다. 대리운전은 대역 배우와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일경제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국밥 한그릇 5000원’ 점심 때 직장인 9천명 몰리는 이 곳 - 매일경제
- 수천억 빌딩도 미련없이 판다…‘죽기살기’ 몸집 키우는 증권사들 왜 - 매일경제
- 환자 실은 척 하고 연예인 태워다 준 사설 엠뷸런스…운전자 잡고보니 - 매일경제
- [단독] 고물가에도 강남은 지갑 열었다…매출 3조 백화점 탄생 ‘눈앞’ - 매일경제
- 이스라엘, 가자에 ‘한국시간 15일 저녁 7시까지 대피령’…17년만에 최대규모 지상군 투입할듯 -
- [속보] 김기현 “총선 패배하면 정계은퇴로 책임지겠다” - 매일경제
- “숨만 쉬는데 다 돈이네”…‘미친 밥상물가’ 시대에 살아가는 법 - 매일경제
- “13억대 84㎡ 미계약 수두룩”…‘고분양가 논란’ 상도 푸르지오 선착순 ‘줍줍’현장 가보니
- 전쟁 앞에선 ‘NO재팬·혐한’ 없었다…우리군에 찬사 쏟아낸 일본 - 매일경제
- 이란에서 여성과 신체 접촉한 호날두, 태형 99대 위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