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대리운전자의 슬픔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0. 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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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선 채 바깥을 향해 말려 있는 바짓단을 본다

타인의 거처에 닿아

또 다른 타인의 거처로

거기서 다시 처음 보는 사람의 집으로

몇 번을 거듭해 온 젖은 흔적들

취객이 조수석 창문을 조금 내리더니 뭐라고 외친다 어떤 말은 듣고 어떤 건 휘발되게 둔다 그 말들이 가슴에 못 스며들도록 다음 고객을 상상한다 이 취객보단 조건이 좋은 어떤 고객을

연극 무대에 대역 배우로 서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스쳐 갈 때마다 우는 배역이었다 - 최세라 作 '대리운전' 중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는 대리운전이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일까. 참 기구하면서도 희생적인 직업이다. 누군가의 거처에 사람을 내려주고 다시 길 한가운데 섰을 때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바짓단이 마를 날이 하루도 없을 것 같다. 각기 다른 사연들에 젖었을 테니 말이다. '대리운전'자의 운명을 비유한 마지막 두 행이 정말 압권이다. 그렇다. 대리운전은 대역 배우와 비슷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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