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X' 같은 전쟁
홀로코스트 현장 교육 강조
지금은 SNS 전쟁 시대
가짜뉴스 판별 교육 절실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연단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두 번이나. '쾅' 소리가 났다. 마이크가 떨어질 뻔했다. 목소리에도 분노가 묻어났다. 대중연설에선 늘 어딘지 모르게 지치고 힘들어 보였지만 이날은 예외였다.
지난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대인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모아놓고 "10월 7일은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 이래 가장 끔찍한 날이 됐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부통령이던 2015년 손녀와 독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갔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 손주들도 14살이 되면 거기 꼭 데려갔다"며 "인류 역사 최악의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새벽 6시 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안식일을 틈타 로켓포를 쏘고 지상에는 대원들을 침투시켰다.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인질로 잡아갔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날이었다. 미국 정부는 즉각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알카에다에 기습적으로 당했던 9·11테러를 소환했다. 이어 '9·11(나인 원 원)'처럼 '10·7(텐 세븐)'이란 고유명사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날의 끔찍한 장면들은 SNS에서 클릭 몇 번이면 찾아볼 수 있다. 피 묻은 손의 폭도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젊은 여성의 영상부터 색칠놀이를 하던 어린이집 책상에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사진까지 잔혹함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가짜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는 점. 아니, 구분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당국의 엑스(X·옛 트위터) 공식 계정 발표 자료보다 팔레스타인 소녀가 틱톡에 올려주는 '가자지구 실시간 영상'이 더 눈길을 끄는 게 사실이니까.
지난 일주일간 X에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게시물 중엔 가자지구 내 그리스정교회 소속 성 포르피리오스 교회가 폭격을 당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이 있었다. 가짜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인 이 교회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영상이 떠돌아다니자 교회 측에서 4개 국어로 해명 자료를 냈다. 영상은 사실이 아니며 교회는 건재하다고. 수백만 회씩 조회된 가자지구 서쪽 해안 배경의 조명탄 사진도 있었다. 이것도 가짜다. 알제리 축구팬이 올린 불꽃놀이 사진을 짜깁기한 거다. 4살짜리 여자아이가 목줄에 묶여 살려달라며 우는 영상도 가짜다. 10년 전 시리아 실종 소녀 영상을 가져다가 제목만 '이스라엘 소녀 인질'로 바꿔 단 게 전부다.
소셜 전쟁의 시대다. SNS가 전쟁판을 들었다 놨다 한다. CNN을 보는 게 아니라 X를 뒤지며 전황 업데이트를 찾는 세상이다. 언론의 가자지구 진입이 원천 봉쇄돼 누구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올려주는 영상이 전부다. X에 검증 없이 올라오는 이런 영상들은 기사를 통해 재확산된다. 기사가 X를 통해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돼버렸다. X에 떠도는 영상이 진짜인지 알아보려고 기사를 찾아봤다는 사람도 여럿 봤다.
바이든 대통령처럼 아이들이 14살 되면 유대인 학살 현장 교육을 보내자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 급한 건 SNS에 떠도는 글·사진·영상 등을 보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이다. X는 가장 위험한 전장이 됐다. X는 전쟁터를 눈앞에 보여주며 귀에 대고 소근거린다. 아이들은 그 생각이 자기 생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수일 또는 수주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상에서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겠지만 디지털 공간에서의 포성도 이에 못지않을 것이다. 가짜뉴스의 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에 따른 희생자도 다수 생길 것이다. X 같은 전쟁이다.
[한예경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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