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언론 통제 시도 방통심의위, 17세기 출판허가제와 유사"
학술대회에서 김민정 교수, "최근 일 무지막지, 대자보 붙이는 심정"
17세기 언론자유 강조했던 '아레오파지티카' 다시 꺼내는 이유
"나름 규제 타당성 있다고 생각할 것, 나만 선이란 확신 경계할 필요"
"나와 상관 없다고 여기는 언론사들도 결국 영향받게 될 것, 목소리 내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최근 몇 달 동안 일어나는 일이 너무 무지막지해서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논의도 중요하겠습니다만 그보다 동료 언론학자분들게 편지를 건네는, 대자보를 붙이는 심정으로 준비를 해봤습니다.”
지난 14일 열린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아레오파지티카 in 2023' 발표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아레오파지티카'는 1644년 존 밀턴이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출판허가제'를 반대하며 쓴 책으로 언론 자유 중요성을 강조한 '고전'으로 꼽힌다. '거짓은 진리를 이길 수 없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다들 잘 알 수밖에 없는, 언론 법제 수업을 할 때 한 번씩 꼭 언급하실 책”이라며 “2018년 미국 블라시(Blasi) 교수가 아레오파지티카를 다시 어떻게 읽으면 좋을 것인지 논문을 낸 게 있다. 그 내용을 지금 시점에서 같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7세기에 강조됐던 언론 자유가 21세기 와서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관련 주요 고소·고발 사례 △언론사/기자 압수수색 △취재 및 지원사업 배제 △수신료 분리징수 등 예산삭감 △'가짜뉴스' 퇴치 정책 등의 사례가 꼽혔다.
김 교수는 “언론사와 기자를 압수수색하는 것이 너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해외에선 극히 예외적 경우가 아니면 언론사나 기자는 압수수색해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며 “TV수신료 분리징수 같은 것도 시행령을 통해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 추진됐고 국민 납세 의무가 있는 것인데 선택 사항인 것처럼 보도자료를 내는 등 여러 문제가 많다. 예산 삭감을 통한 '옥죄기'라고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 퇴치 정책'에 대한 많은 우려가 나왔다. 김 교수는 “가짜뉴스에 언론 보도를 포함시키는 건 타당하지 않다. 원래 '페이크 뉴스'(Fake News)는 언론사가 생산한 뉴스가 아닌데 언론 보도를 흉내낸 걸 가리키지 않았나. 이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대표적 예시로 해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칭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짜뉴스에 언론 보도를 포함하는 건) 언론사가 마치 의도적으로 허위정보를 생산하는 주체, 언론사들의 문제 제기를 들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린다. 비판 보도를 매도하는 전략이라고 생각이 되고 공론장 형성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프레임이다. 매우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는 선과 악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선을 자처해 진리를 독점하고 출판을 금지하는 건 진리를 '멈추게'(stop)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선과 악은 서로 붙어 있기 때문에 거짓되고 위험한 사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도 접하고 그것을 통해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밀턴은) 역설했다”고 했다.
밀턴이 반대했던 출판 허가제와 최근의 방통심의위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방통심의위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개설하고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언론 보도를 인터넷게시물 심의인 통신심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 모든 출판물을 사전에 제출한 다음 출판이 허가되는 그런 방식은 물론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 이게 지금 방통심의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제 시도들과도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레오파지티카는 출판허가제를 '공원 문을 닫아서 까마귀를 가둘 수 있다고 여기는 것만큼 어리석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밀턴은 질서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내면으로부터 사람들이 설득이 되고 그 질서에 순응하도록 만들어야지, 법을 통해 강제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유지되기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금 규제를 하는 쪽도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만이 맞다는 확신, 나만이 절대 선이라는 확신은 끊임없이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지금 그러한 양상들이 문제적이지 않나 생각한다”며 “언론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이 되고 그 다음에 언론 책임은 언론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책임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의 상황이 이전부터 이어진 언론 규제 흐름의 일환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언론에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왔고 국민의힘은 반대했다. 지금의 여야가 뒤바뀐 모습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지금의 방통심의위 문제는 법원에 가서 뒤집어질 수도 있다. 그보다 고민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언론에 대한 규제 중심 사회인가 하는 것”이라며 “지난 정부 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온갖 법률을 동원해서 강력한 규제 체제를 갖췄다면 지금 어떻게 했어야 할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교수도 “20대 국회에서도 가짜뉴스 규제 법안이 많이 나왔다. 그러한 것들을 비판하는 논문도 많이 나왔는데 왜 이걸 다시 반복해야 하는지가 너무 답답하다”며 “그때 (가짜뉴스 규제가) 아니라고 얘기를 했으면 한 걸음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예전에도 그랬잖아. 지금도 뭐 어때' 이런 식의 접근 방식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특히나 자신들하고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언론사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중 가면 상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정부에서 강력하게 (가짜뉴스 규제를) 반대했던 언론사들이 지금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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