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차 에너지 64% 줄일 수 있는 그린리모델링 두고…국토부 ‘보일러 교체’로 채우겠다?

강한들 기자 2023. 10.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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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그린리모델링’을 마친 대전 중구 선화동빌딩 벽면에는 태양광 발전 패널이 부착돼 있었다. 강한들 기자

지난 5일 대전 중구 선화동.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그린 리모델링’을 마친 건물에서 창문을 열자 이내 선선한 가을 공기가 공간을 메웠다. 건물 남향에는 통창을 포함한 12개의 창이, 북향에는 11개, 서향에는 5개의 작은 창이 나 있다. 단열을 위해 기존에 띠 형태로 세 면을 둘러싸고 있던 창을 바꿨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3년 가까운 기간을 들여 노후 빌딩을 ‘그린 리모델링’했다. 2020년 말 사업 승인을 받은 뒤 1년여 동안 기획·설계 과정을 거쳤고 다시 1년 정도 공사에 썼다. 비용 56억원은 국유재산관리기금에서 충당했다. 그 결과 건물의 1차 에너지 소요량을 64.7% 줄였다.

그린 리모델링의 효과는 증명됐지만 정작 정부는 공공·민간 지원 사업을 축소했다. 국토교통부는 민간 건축물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이자 지원 사업 신규 접수를 내년에는 멈춘다. 국토부는 건축주가 초기 사업비 부담 없이 건축물의 성능을 개선 할 수 있도록 노후 민간건축물 그린리모델링 공사비 금융 대출 알선, 이자 일부 지원 등을 해왔다.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예산은 올해 1910억원에서 내년 1275억원으로 635억원 삭감했다.

그린리모델링은 대표적인 건물 부문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다. 국토부는 2021년 4월 발표한 ‘제2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에서 2024년에는 그린리모델링 이자 지원 사업 2만 건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토부는 “2021년 하반기 이후 전반적인 집행 실적이 부진하고, 앞으로 고금리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돼 새 방식의 사업 방안으로 개편하기 위해 2024년부터 신규 사업을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5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국토부는 아직까지 연도별 그린 리모델링 세부 목표도 내지 못했다. 대신 ‘보일러 교체’가 위주인 사업을 ‘그린 리모델링’의 예시로 제시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그린리모델링’을 하기 전 대전 중구 선화동빌딩 모습. 이명주 명지대 교수 제공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그린리모델링’을 한 후 대전 중구 선화동빌딩 모습. 이명주 명지대 교수 제공

선화동 빌딩의 리모델링 공사 비용은 평당 507만원으로, 새 건물을 짓는 비용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재건축보다 건설 폐기물도 적다.

빌딩 남·북향 창문은 한쪽만 경첩으로 고정해 여닫을 수 있다. 자연 환기에 유리하다. 건물 설계를 맡은 이명주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는 “사무실 건물에 환기가 잘 안 돼서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은 ‘녹색건축인증’을 받기 위해 창문 면적은 줄이면서도, 창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해 환기가 잘 되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건물 내·외부에 단열도 보강했다.

대전 중구 선화동 빌딩은 남향 창문은 한쪽만 경첩으로 고정돼 여닫을 수 있도록 해 자연 환기에 유리하게 했다. 강한들 기자

노란 페인트칠이 돼 있는 동쪽 벽면에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붙였다. 15㎾ 용량의 패널은 건물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7.5%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치 비용은 약 4000만원 수준이다.

리모델링 뒤 건축물 에너지 효율 등급은 4등급에서 ‘1++’등급까지 올랐다. 건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제도는 난방, 냉방, 급탕, 조명, 환기 등에 필요한 단위면적당 에너지 소요량을 평가해 총 10단계로 나뉜다. ‘1++’등급은 이 중 2번째 등급이다. 정부는 2021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낼 때 기존 상업 건물을 그린리모델링할 경우 에너지 효율 1+ 등급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후퇴하는 그린 리모델링 정책…‘보일러 교체’로 탄소중립 할 수 있나

이런 사례를 점차 늘리며 관련 업계의 경험 축적을 유도해야 할 정부의 그린 리모델링 정책은 점차 후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내며 2030년까지 누적 ‘그린 리모델링’을 약 160만건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간 19만건 이상을 해야 맞출 수 있는 목표지만, 국토부의 현행 지원 사업으로는 연간 1만건 수준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그린 리모델링’ 누적 목표의 근거와 세부 계획에 대한 질의에 “목표 건수 160만 건은 국토부, 지자체, 민간에서 진행하는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건수를 합산한 수치”라며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도 저탄소 주택 100만호 확산 사업과 같은 건물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한 창호 교체 등 에너지 효율 개선도 공사 전후 성능 개선 비율을 확인해 추가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국토부가 예시로 든 서울시 저탄소 건물 전환 100만호 사업의 2022년~2023년 5월 실적 39만2671건을 보면 36만5485건(93%)은 ‘가정용 친환경 보일러 지원’ 사업이다. 공공건물 저탄소 전환은 86건에 불과했고, 어린이집 등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112건이었다. 그나마 지난해 공공임대주택 그린 리모델링이 1만5586건 이뤄졌지만, 서울시 자체 목표에 못 미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낸 ‘2030년 탄소배출 제로 건축물의 기술혁신방안’ 보고서를 보면 2030년까지 기존 건축물의 20%를 ‘탄소 배출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 연간 ‘2% 이상’의 그린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기후변화 완화 이외에도 에너지 안보를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단으로도 중요하다”라며 “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선 강력한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고, 정책적·법적·행정적 지원 틀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봤다.

장 의원은 “160만 건이라는 도전적 그린 리모델링 목표를 제시했으면 획기적인 정책예산 투입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부자 감세로 투입할 재정도 없고, 에너지 기준을 설정해 민간에 의무를 부과할 생각도 하지 못하니 방법이 없는 것”이라며 “기후위기로 극심해질 폭염과 혹한에 국민을 방치할 게 아니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단독] 건물 부문 탄소 중립 가능한가…민간 그린 리모델링 이자 지원 사업, 대안 없이 종료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3100513490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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