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 화백, 하늘로 떠나다
연필로 선 긋는 '묘법' 통해
한국 단색화 세계화 이끌어
지독한 생활고·폐암에도 작업
영국 미국 등 세계에서 전시
올해 홍콩 경매 35억원 기록
"하루 사이 바람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3주 전 가을바람을 맞으며 남긴 마지막 말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자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였던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92세.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도 담담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박서보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며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화가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암흑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0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2기로 입학했으나, 자유와 낭만이 넘치는 대학 생활은 석 달 보름 만에 6·25전쟁으로 일단락됐다. 미술대학 재학생이란 이유로 인민군에 끌려간 뒤 선무공작대에 분류돼 징집된 그는 연극 무대미술을 제작하기도 했다.
전쟁통에 전시학교가 있는 부산 홍익대 회화과에서는 동양화과 교수가 사라졌다. 그런 이유로 1952년 서양화과로 전과한 직후 수화(樹話) 김환기 (1913~1976)가 마침 그해 홍익대에 왔다. 비싼 캔버스를 살 수 없어 미군이 내다 버린 전투식량인 '레이션 박스(Ration Box)'를 주워다 빨간 베레를 쓴 자화상을 그린 걸 보고, 김환기는 "이걸 처음 그렸다고? 이 사람, 천재네. 이제 대가네, 대가!"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생활고로 독한 됫병 소주와 일명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시간에 초상화를 그리며 돈을 벌어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다. 1955년 스승 김환기의 권유로 출품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입선했다. 1956년 그는 전람회 미술을 거부하며 '반(反)국전'의 기치를 걸고 동방문화회관에서 4인전을 열었다. 반국전 운동은 큰 사건이 됐다. 1962년 이후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1986~1990년 미술대학장을 지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60년대 후반 화면에 물감을 바르고 연필로 수없이 선을 그은 대표작 '묘법'을 선보이며 독창적 예술 세계로 침잠해갔다. 다섯 살 난 둘째 아들이 비뚤비뚤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체념의 몸짓을 흉내 내려 한 작품'이 바로 첫 묘법이었다. 연필로 수백, 수천 번 긋기를 반복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무늬를 만들어내고, 그 무늬는 수행의 결과물이 된다. 수행의 예술은 치유와 위로의 힘을 가져다준다.
박서보의 '묘법'을 위시한 단색화는 50여 년간 이어진 뚝심 있는 작업이었으나 10여 년 전에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0여 년의 여정을 아우르며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정창섭 등이 참여한 '한국의 단색화' 전이 열렸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렬 전시로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에서 연 '단색화' 전은 한국 미술의 위상을 단번에 끌어올린 사건이 됐다.
1975년 작 '묘법 No. 37-75-76'이 지난 5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60만달러(약 35억원)에 팔릴 만큼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2019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생애 두 번째 회고전을 열었다. 둑이 터진 듯 인파가 몰려들자 그는 특유의 중절모를 벗어 들고 인사했다. "여러분이 나를 만나기 전에 '뿔난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는 풍문을 들었을 겁니다. 아침에 (뿔을) 다 밀고 왔습니다."
매일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해 그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서보 이름을 딴 첫 번째 미술관은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올해 상반기 착공했다. 2019년 제64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치열하게 이룬 화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영원히 가치 있게 빛날 것"이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화가인 부인 윤명숙 씨를 비롯해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김슬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30억 대박’ 로또 1등 9명 당첨자들, 어디서 샀나 봤더니 - 매일경제
- ‘국밥 한그릇 5000원’ 점심 때 직장인 9천명 몰리는 이 곳 - 매일경제
- 수천억 빌딩도 미련없이 판다…‘죽기살기’ 몸집 키우는 증권사들 왜 - 매일경제
- 환자 실은 척 하고 연예인 태워다 준 사설 엠뷸런스…운전자 잡고보니 - 매일경제
- [단독] 질주하는 신세계 강남점, 매출 첫 3조 돌파 유력 - 매일경제
- “수능에 안 나오는데 수업 왜 들어요”…고교학점제 재검토 여론 확산 - 매일경제
- 이스라엘, 가자에 ‘한국시간 15일 저녁 7시까지 대피령’…17년만에 최대규모 지상군 투입할듯 -
- “숨만 쉬는데 다 돈이네”…‘미친 밥상물가’ 시대에 살아가는 법 - 매일경제
- “13억대 84㎡ 미계약 수두룩”…‘고분양가 논란’ 상도 푸르지오 선착순 ‘줍줍’현장 가보니
- 이란에서 여성과 신체 접촉한 호날두, 태형 99대 위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