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차별의 부메랑은 남성을 향한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2023. 10. 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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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가정에서 돌봄자에만 그치지 않듯 남성 또한 직장인에만 한정되지 않아
노벨경제학상 골딘 교수, 성별 임금 격차 원인으로 ‘첫아이 출생 시점’ 지목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남자친구 있어요?" "네" "결혼 계획은 있어요? 언제쯤…." 최근 한 중소기업에서 면접을 본 젊은 여성은 면접관의 질문을 받고 무척 황당했다고 한다. 그 여성이 말하길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입사 면접 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지만, 막상 자신이 당하고 나니 어이없고 화도 났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 결혼 계획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 영역인데 입사 면접장에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최근 만난 50대 여성에게 했더니 30여 년 전에 자신도 광고회사 입사 면접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전 그때 꼭 취업해야 했기에 남자친구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고 결혼 계획도 아직 없다고 대답했지만… 세상이 이렇게 안 바뀌는구나"라며 속상해했다.

똑같은 경험을 남성들은 하고 있을까? "여자친구는 있어요?" "결혼 계획은?" "출산 계획은 있어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남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은 여성의 결혼 계획으로, 출산 계획으로, '언제쯤? 몇 명이나?'로 이어지며, 이런 질문들은 당연히 면접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결혼도 아이 출산도 여성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닐진대 왜 이런 질문은 여성에게만 하는 것일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 시민단체들이 2020년 2월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20년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제4회 3시 STOP 여성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OECD 평균의 3배

그것은 집안일과 아이 돌봄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고 여기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에서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 이런 가부장적인 편견은 회사의 운영 방향에 반영되어 여성의 결혼과 출산, 육아는 기업의 생산성 저하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취업의 당락 여부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 대한민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을 조금 웃돌았으며 내년에는 0.6을 기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려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몇십 년간 수조원에 가까운 비용을 치르며 저출생 저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거의 무위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그동안 국가와 사회, 기업이 상반된 이중 메시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국가는 아기를 낳을 것을 권유하고 그를 위해 난임부부 지원, 육아휴직 의무화, 육아수당 등 여러 가지 정책을 허겁지겁 내놓고 있지만, 노키즈존 등 아이를 반기지 않는 우리네 사회환경과 여직원의 출산·육아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사고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기업은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대기업의 직원 성평등 복지는 나아졌지만, 중소기업 등의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앞의 사례가 아주 잘 말해 주지 않는가? 30여 년 전에 대기업에서 받았던 질문은 30년이 지나고, 유례없는 저출생으로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도 여전히 태평스레 기업 인사관리자로부터 여성 근로자에게 던져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당을 만들어 돈으로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저출생의 진정한 원인은 돈이 아니라 바로 '근로' 즉 '일터'의 문제다. 여성에게 일터는 더 이상 부업이 아니고 삶을 일구는 중요한 기반이다. 근래 모 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젊은 여성은 40여 명의 졸업 인원 중에서 자기 혼자만 취업되어 친구들과 기쁨을 나눌 수도 없다는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입사 취소, 부당 해고의 피해를 본 여성은 남성보다 많았다. 지난 9월 '직장갑질 119'와 '아름다운 재단'이 1000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500만원 이상을 받는 근로여성보다 150만원 미만을 받는 근로여성이 성차별적 언사와 혐오 발언을 더 많이 경험했음이 밝혀졌다.

이렇게 우리 사회와 기업의 전반에서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성인지 감수성이 낮고 성차별적인 가치관과 행동으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성차별적인 요인들은 구조적이므로 사회에 맡기거나 노조와 시민단체의 힘으로만 바꾸기 어렵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성차별 예방을 위한 교육과 정책을 만들고, 성차별적인 기업을 처벌하고 교육하며, 사회와 기업이 변화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통계를 시작한 이후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성별 임금 격차는 같은 일을 하는데도 남성에게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여성이 승진하기 어렵거나, 좋은 직장에서 안 받아주는 문제, 특정 업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데서 발생한다. OECD 회원국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11.9%이며, 스웨덴은 7.3%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려 33.1%다. 이런 성별 임금 격차는 성차별에서 비롯되며, 이는 다시 성차별을 이끈다.

일터에서 여성 배제하면 남성이 더 일해야

올해 '남녀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대의 클로리아 골딘 교수는 20세기 들어 여성의 교육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취업하는 여성이 늘어나는데도 남녀의 소득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그 이유로 '첫아이 출생 시점'을 지목했다. 또 여성이 집안일과 아이 돌봄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고 많은 보수가 따르는 일자리에는 접근하기 어렵고, 이보다 덜 경쟁적이거나 적은 보수를 받는 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골딘 교수는 많은 교육을 받은 여성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가족이 육아에 들이는 비용을 국가가 크게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여야 국가의 경제생산성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렇게 여성이 근로 현장에서 경험하는 경력 단절과 유리천장 문제들을 적극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한다면 여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 여성은 남성의 동반자이며 따라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의 그림자는 여성에게만 드리우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여성을 차별해 경력이 단절되거나, 높은 임금을 받는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남성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노동시간을 더욱 줄이고, 기업은 불필요한 회식 문화를 없애며, 육아휴직을 의무화해 남성들이 가정에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도와야 한다. 여성의 정체성이 가정 안에서 돌봄자에만 그치지 않듯이 남성의 정체성 또한 직장인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딸이며 그 자신이듯이 남성은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아들이며 그 자신이다. 성차별이 근절되어야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은 균질하게 더 좋아질 것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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