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부담” 서울대 대학원생의 죽음…“남일 아니다” 말하는 대학원생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의 한 20대 대학원생이 지난 13일 “공부가 힘들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학내 도서관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소식에 또래 대학원생들은 그 죽음이 남일 같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의 한 대학원생 A씨(29)는 사건이 발생한 이튿날 기사로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그는 15일 통화에서 고인이 남긴 “공부가 힘들다”는 짧은 문장에 담긴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생들은 인간관계와 생활 반경이 제한된 상태에서 생활한다”며 “교수님이 괴롭힌다거나 부당행위를 당하지 않더라도 나만 못하는 것 같거나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학생이자 연구노동자인 대학원생의 정신건강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2011년 카이스트에서 학부생 4명이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불투명한 진로, 불안정한 지위, 과도한 경쟁, 연구실 내 위계질서 등으로 대학원생 및 학생 연구자들이 받는 정신적 압박이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서울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졸업한 전모씨는 석박사 과정 동안 선배 1명과 동기 1명을 잃었다고 했다. 전씨는 “이번 사건은 학교에서 발생해 (외부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못한 죽음도 많을 것”이라며 “직접적인 갑질이 없더라도 교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 구조와 공부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로 목줄을 잡힌 기분이 드는 게 대학원생 생활”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공부를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 대학원생 B씨(28)는 “공감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말이 안 된다”며 “대학원생은 다른 취업준비를 포기하고 학교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회사가 힘들다고 때려치울 수 없듯이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린 글에서 한 학생은 “마음 편히 쉬기에 사회가 각박하다. 나이에 대한 압박이 심한 사회에서 지금 쉬면 쉬는 게 아니라 뒤처지는 게 되어버린다”고 토로했다.
서울대 인권센터가 지난해 11월 22일부터 12월21일까지 대학원생 17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서울대 대학원생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1명(22.6%·387명)꼴로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 12.1%(47명)는 실제로 그런 시도나 계획을 해본 적 있다고 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대학원생들이 고립되지 않고 심리적 부담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Grad Resources)는 1999년부터 대학원생이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에 특화된 상담사가 24시간 상주하는 대학원생 위기상담 전화(The National Grad Crisis Line)를 운영한다. 1998년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밟던 제이슨 알톰이 학업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계기였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타교에서 학부 공부를 한 후 새롭게 대학원에 적응해야 하는 이들이나 개인 독학식 연구를 진행하는 대학원생들은 더욱 고립감을 느끼고 어려움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며 “위험신호가 방치되지 않도록 어려움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에 대한 안내도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141606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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