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현의 테크딥다이브] `저장버튼` 남기고 사라진 디스켓

팽동현 2023. 10. 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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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年 50억개 이상 판매
HDD 가격 인하에 점차 외면
3.5인치 플로피디스크. 픽사베이
플로피디스크를 안다면 암 검진을 받을 때라고 적힌 광고판. 온라인캡처

DX(디지털전환)의 흐름이 세계를 덮치고 있다. 그 핵심인 SW(소프트웨어)는 이미 여러 산업분야를 탈바꿈시켰고, 나아가 AI(인공지능)로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이제 IT(정보기술)은 우리 일과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시시각각 진화하는 기술들과 이들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좀 더 깊이 발을 들여 더 많은 생각을 나누고자 '팽동현의 테크딥다이브' 코너를 마련했다.<편집자주>

오피스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SW(소프트웨어) 도구의 UI(사용자화면)에는 '저장'을 실행하는 버튼으로 특정 아이콘이 널리 쓰인다. '인쇄'버튼에 그려진 '프린터'의 경우 여전히 여러 사무실에서 접할 수 있는 반면, '저장'버튼에 담긴 이 사각형 물체는 행방이 묘연하다.

젊은 세대에선 단순히 '저장버튼'으로 통용되기도 하고, 간혹 레트로 감성을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소품으로 쓰이는 이 물건의 정체는 '플로피디스크'다. 2021년 미국의 한 암센터는 "플로피디스크를 안다면 암 검진을 받을 때"라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지만, 아는 것을 넘어 '디스켓'이라 부르며 직접 썼던 세대가 대상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플로피디스크는 HDD(하드디스크)와 같은 자기매체로 작동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선보인 곳은 미국 IBM으로, 1967년 개발을 시작해 1971년 8인치 모델의 첫 제품을 FDD(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와 함께 내놨다. 1970년대 중반에 5.25인치 모델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이동식 저장매체인 펀치카드를 대체, 1981년 IBM PC(x86 아키텍처)가 세상에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현재 '저장'의 아이콘으로 남은 것은 1980년대 중반에 출시돼 점차 대세를 이뤘던 3.5인치 제품이다. GUI(그래픽UI) 혁명을 일으킨 1995년 '윈도95' 등장 때 한창 현역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버튼에 담겼다. 앞서 5.25인치 제품만 해도 이름(floppy)처럼 잘 구부러져서 케이스 없이 갖고 다니면 훼손될 우려가 컸지만, 정작 저장버튼에 모습이 담긴 3.5인치 제품은 이름과 달리 비교적 딱딱했다.

플로피디스크는 그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적으로 연간 50억개 이상이 판매됐으나, 이미 이때부터 더 빠른 데이터 읽기·쓰기를 지원하는 CD에게 슬슬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또한 HDD 가격이 내려가고 용량이 올라갈수록 보통 한 장에 1.44MB(메가바이트)에 불과했던 플로피디스크는 점차 외면 받게 됐다. 2010년 일본 소니가 플로피디스크 생산을 중단, 현재는 그 역할을 USB 메모리나 클라우드 서비스에 물려준 상태다.

지금은 흘러간 시대의 유물과 같은 취급을 받는 플로피디스크지만, PC와 같은 기기 내부 스토리지 용량이 충분치 않았고 인터넷 등 외부 네트워크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SW·콘텐츠의 저장·백업뿐 아니라 배포·전달 역할도 도맡았다. SW가 이전과 달리 HW(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별도 판매되는 발판이 됐기에 PC 확산과 더불어 SW산업의 태동을 이끈 것으로도 평가된다.

그런데 여전히 플로피디스크 퇴출 운동을 펼치는 곳도 있다. 바로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 디지털청 조사에 따르면 정부부처 법령 중 행정절차 관련 서류 제출·보관에 쓰일 전자기록매체를 지정한 조문이 1894개나 되며, 이 중 70%(1338개)가 플로피디스크로 돼있다. 시민 개인정보가 담긴 플로피디스크를 일본 경시청이 분실한 적도 있고, 은행업계에선 급여나 지원금 명단을 플로피디스크에 담아 전달하기도 한다. 15~29세 청년층에서도 플로피디스크를 써본 비율이 2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에 지난해 고노 다로 디지털상(장관)이 '플로피디스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올해 초 국회에서 국정과제를 설명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행정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하거나, 플로피 디스크를 지정해 정보 제출을 요구해온 규제를 재검토하는 개혁을 내년까지 2년 동안 단숨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SSD(솔리드스테이드드라이브)도 보편화돼 올플래시 데이터센터까지 거론되는 판국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런 일본의 사례를 보고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을지 모른다. 뒤이어 초고령화로 접어들면서 더 심한 인구절벽을 앞둔 우리사회에 언제까지 민첩하고 유연한 모습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뛰어난 SW인력이 없어서 이렇게 됐다고 여기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던 오픈소스SW 중 하나인 플루언티드를 만든 사람도 일본 출신이다.

중요한 것은 IT(정보기술)를 민첩하게 다룰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유연하게 이끌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런데 우리도 언젠가부터 점점 굳어져가는 것 같다. 공공SW산업을 맡아온 IT서비스업계는 낮은 이윤과 부당한 요구에 오래 몸살을 앓아왔고,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은 이제야 첫발을 떼는 셈이다. 이 가운데 SaaS(서비스형SW) 등 구독형 서비스 채택을 위한 예산 체계 마련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생성형 AI(인공지능)의 꿈에 부풀어 있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 아닐까. 미래의 한국이 현재 일본의 플로피디스크 사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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