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사실로...글로벌 투자은행 2곳, 수개월간 560억 불법 공매도
글로벌 투자은행(IB) 2곳이 수 개월 동안 수백억원 규모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일삼은 사실이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매매 기법이다. 팔기 전에 먼저 빌리는 것이 필수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현행법상 불법이다.
그간 외국계 투자은행이 단발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벌인 적은 있었지만, 대규모로 관행적으로 지속한 것이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국내 금투업계 일각에서 “외국계 투자자들이 대거 불법 공매도를 저질러 국내 자본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번 적발로 이런 주장이 일부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금감원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BNP파리바 홍콩법인은 지난 2021년 9월부터 작년 5월까지 9개월 간 카카오 등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BNP파리바는 이 과정에서 부서 간 소유주식을 중복으로 계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어 BNP파리바의 사내 a부서가 주식 100주를 갖고 있고, b부서에 50주를 대여해줬다고 하자. 그런데 a부서는 이 대여 내역을 입력하지 않고 100주를 잔고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b부서도 대여한 주식 50주를 잔고로 인식해 BNP파리바 전체로는 150주를 잔고로 봐 그만큼 공매도 했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50주 만큼이 불법으로 무차입 공매도 된 것이다.
대형 IB 사들은 매일 주식 잔고와 공매도 체결 수량을 확인하는 만큼, BNP파리바는 그 과정에서 무차입 공매도 사실을 인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사후에 차입하는 방식으로 위법행위를 방치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홍콩 소재 IB인 HSBC 역시 2021년 8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5개월 간 호텔신라 등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을 무차입 공매도했다.
HSBC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매도스왑 주문을 받고, 사전에 차입이 확정된 주식 수량이 아니라 향후 가능한 수량을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매도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글로벌 IB가 우리나라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이런 불법 공매도 관행을 이어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며 “장기간 무차입 공매도를 해왔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불법 공매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이들 IB가 각 종목의 악재성 정보가 공개되기 전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한 정황은 따로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이들의 이들의 불법 공매도가 당시 주식시장에 미쳤을 영향도 적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별 종목의 공매도 비중 자체는 크지 않고, 이들이 공매도를 하고 다시 청산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본 경우도 많다”며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IB는 중개 역할만 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은 최종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며 “수수료 수입을 위해 불법적인 프로세스를 방치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금감원은 이번 불법 공매도 적발로 과징금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했다. 직전 최대 규모 과징금은 올해 3월 외국계 금융투자회사 대상 38억7000만원이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회사와 유사한 주요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필요시 해외 감독 당국과 긴밀한 공조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해외 소재 금융투자회사들의 불법 공매도 행위를 엄단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공매도 조사팀은 올해 들어 9월까지 30명(외국인 21명)의 무차입 공매도에 대해 104억9000만원의 과태료·과징금을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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