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수입전기차 판매 95% 급증...비쌀수록 과시하는 ‘베블런 효과’
국내 전체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도 1억원이 넘는 고가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승용차 신규 등록’ 통계를 보면, 수입차(테슬라 제외) 중 출고가가 1억원 이상인 순수 전기차의 1~9월 판매량은 588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3009대)과 비교해 95.5% 증가했다. 브랜드별로는 메르세데스-벤츠(3486대), 포르셰(1167대), BMW(987대), 아우디(243대) 순으로 독일 브랜드의 판매량이 많았다. 특히 벤츠의 EQE 350와 EQS 580 SUV, 포르셰 타이칸, BMW iX 등이 인기 모델이었다.
이는 최근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든 사실과 대조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같은 기간 국내에 신규 등록된 국산·수입 전기차는 11만761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9% 줄었다. 지난해 1년간 전기차 16만4482대가 신규 등록되며 63.8%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판매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기차 가격 상승·보조금 감소·충전 인프라 부족 등이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고가 수입 전기차 시장은 사정이 다르다.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출고 가격이 8500만원이 넘다 보니 국가·지자체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는데도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수입차 관계자는 “독일 차는 ‘명품’으로 인식되다 보니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니더라도 수요가 있다”며 “성능도 좋지만 명품을 샀다는 만족도를 누리려는 소비층”이라고 말했다. 수입차 브랜드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할인 행사를 확대하는 것도 고가 차량 판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높아도 과시욕 등으로 수요가 오히려 느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로도 볼 수 있다. 미국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의 1899년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나온 말이다. 베블런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상류층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전기차 가격을 낮추고 있다. 전기차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값싼 중국산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교체하거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형 전기차를 새로 내놓는 식이다.
기아는 중국 CATL(닝더스다이)의 LFP 배터리를 장착한 경차 ‘레이 EV’를, KG모빌리티는 중국 BYD(비야디)의 LFP 배터리를 사용한 ‘토레스 EVX’를 선보였다. 정부도 최근 전기차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할인 판매하는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최대 100만원까지 추가 지원키로 했다.
현재 국산 전기차 중 가장 비싼 차량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제네시스 G80 전기차(8820만원)’다.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1억원 넘는 고가 전기차는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는 아직 ‘명품’이라는 인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보니 업체들이 고가 전기차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차량 성능을 높이는 것만 아니라, 차를 샀을 때 고객들에게 어떻게 차별화된 경험을 줄 수 있을지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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