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장 전락한 보드게임카페…보드게임 대세는 '집에서'

최우영 기자 2023. 10. 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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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보드게임장 인기 시들해지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도박장'
칩과 카드만 나눠주는 소극적 도박장 개설부터 직접 도박꾼 모집하는 조폭형 사업장까지
보드게임카페는 쇠락하지만 보드게임 산업 자체는 오히려 성장 중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2000년대 초중반 보드게임카페(보드게임장)는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 장소였다. 모노폴리, 할리갈리, 루미큐브 등의 게임은 진입장벽도 낮고 룰에 대한 이해도 쉬워 PC나 콘솔 게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밝은 조명 아래서 음료수를 마시며 웃음이 연신 터져 나오던 게 당시 보드게임카페의 풍경이다.
최근의 보드게임카페는 분위기가 단연 달라졌다. 낮에는 과거처럼 캐쥬얼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종종 있지만, 밤이 되면 도박장으로 변하는 곳들이 많다. 카운터에서 도박에 사용할 베팅 칩을 나눠주고, 알록달록한 보드게임 카드 대신 화투장과 포커 카드를 내준다. 어둑한 조명 아래서 술을 마셔가며 얼마를 베팅하든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보드게임장에 숨어든 타짜의 '하우스 도박'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보드게임장의 도박장화는 최근 경찰에서도 주시한다. 영화 '타짜'의 도박꾼들이 산 속 비닐하우스에 몰래 개설된 도박장에 숨어들어가 판돈을 걸었다면, 이제는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보드게임장 중 일부 공간을 도박장으로 활용한다. 등잔 밑이 어두운 점을 노렸다.

이 역시 형법상 도박개장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보드게임카페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사용료'를 받기 때문이다. 최대 5년의 징역형이나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징역형을 받아도 최대 1000만원의 벌금이 병행 부과되고, 범죄수익금을 몰수 당할 수 있다.

실제 경찰의 단속 사례도 여럿이다. 2019년 2월 경찰이 단속한 서울 도곡동의 보드게임장은 폭력조직과 연계해 연간 460억원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11명이 구속됐다. 올해 3월에는 서울 마곡동의 한 보드게임카페에서 278억원 규모의 도박이 이뤄지던 게 적발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힘들던 보드게임장, 코로나19에 좌절
2020년 2월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코로나19 감염안전진료부스에서 의료진이 소독을 하고 있다. 양지병원 감염안전진료부스는 의사와 환자가 분리돼 감염 위험도를 낮추고 안전하게 검체를 채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보드게임카페의 도박장 개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이 같은 변칙영업 제보는 종종 있었다. 다만 이 같은 변칙에 속도가 붙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로 추정된다.

보드게임장 역시 다른 오프라인 시설과 마찬가지로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됐고, 집합금지명령 또는 영업제한명령의 대상이 됐다. 수익이 악화되는 상황을 견디다 못한 일부 업주들은 자연스레 음지로 빠져들었다.

손님이 끊임 없이 드나드는 음식점이나 주점 등과 달리, 보드게임장을 가장한 도박장은 한번 들어간 손님이 웬만하면 나오지 않는 게 특징이다. 손님을 받은 뒤 문을 걸어잠그고 밤새 영업하는 식으로 방역수칙을 위반해도, 단속을 피하기 쉬웠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19년 8월 31일 서울 길동의 한 보드게임장에서는 23명이 적발됐다. 단속된 시각은 새벽 4시23분이었다.
보드게임의 중심, 카페에서 가족으로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이렇게 보드게임카페들이 쇠락하고 도박장 개설까지 손을 대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보드게임 '산업' 자체는 코로나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하반기까지 테이블 보드게임 산업 매출은 전 세계적으로 20~30% 가량 늘어났다. 과거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 카페에서 즐기는 형태가 많았지만, 다양한 야외 레저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테이블 보드게임이 '가족 놀이'의 대안으로 각광 받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재택수업과 재택근무 등으로 가족용 게임 수요가 크게 늘면서, 테이블 보드게임 입문자들이 속속 늘었다. 2021년 11월 서울 보드게임페스타에는 거리두기에 따른 입장제한에도 불구, 이틀간 4000여명이 찾아와 약 2억2000만원 규모의 게임을 구매했다. 국내 최대 보드게임 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는 2021년 540억원 가량의 매출을 달성해 업계 최초로 500억 선을 돌파했다.
가족용 보드게임, 중장년층까지 확대
지난해 11우러 13일 서울 강남구 SETEC(세텍)에서 열린 보드게임페스타를 찾은 관람객이 보드게임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보드게임 제조업체들은 팬데믹 기간 오프라인 프로모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온라인 마케팅으로 거점을 옮기고 있다. 국내외 모두 보드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를 통한 마케팅도 일반화됐다. 국내에선 보드라이브, 우주티비 등의 채널을 통한 홍보가 흔하다.

해외 퍼블리셔들은 신제품 출시에 앞서 테이블토피아, 테이블탑시뮬레이터, 보드게임 아레나 등 디지털 플랫폼에 '맛뵈기 게임'을 구현해놓은 뒤 홍보하는 게 일반화됐다. 디지털 보드게임이 실제 제품 판매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예측은 실제로는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테이블 보드게임 시장의 성장세는 향후 몇 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팬데믹 당시 늘어난 유저, 최근 신비아파트 등 다채로운 IP(지식재산권)와의 협업으로 창출되는 새로운 시장, 재개되는 오프라인 이벤트 등 긍정적인 요소들이 남아있어서다.

또 국내에서 주로 30~50대 여성들로 구성돼 학교와 학원에서 활동 중인 '보드게임 지도사'들의 활동 분야는 시간이 지날수록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중장년층과 실버 세대를 위한 보드게임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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