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틀어주면 맛이 더 좋아진다?…1500만병 팔린 ‘국민와인’의 비결 [김기정의 와인클럽]
같은 이유로 ‘장기숙성’이 가능한 와인이 고급 와인 취급을 받았고, 와인의 양조기법도 일정 세월이 흘러야 제맛을 낼 수 있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은 20~30년, 부르고뉴의 최고급 와인은 15~20년 정도 병숙성을 거쳐야 맛의 절정기가 온다고도 합니다.
유통혁명으로 오늘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상품이 도착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지금 눈앞에 5년, 10년, 15년을 묵힌 와인이 있습니다. 지금과 맛이 같아야 좋은 걸까요? 아니면 맛이 계속 변해야 좋은 걸까요?
최근 칠레 ‘몬테스’ 와인의 창업자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몬테스의 프리미엄 와인인 몬테스 알파 엠(M)의 버티칼 테이스팅 행사를 직접 진행했습니다. 버티칼 테이스팅이란 같은 생산자의 와인을 빈티지(포도 수확연도)별로 동시에 시음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 몬테스의 버티칼 테이스팅에는 몬테스 알파 엠 2010년, 2015년, 2020년 빈티지가 나왔습니다.
몬테스는 아이콘급 와인들을 특별한 배럴 룸(Barrel Room)에서 숙성시키는 데 배럴 룸에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과 같은 음악을 틀어 놓는다고 합니다.
몬테스 회장은 “음악을 틀어주면 와인 맛이 더 좋아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잘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그들이 만드는 와인의 맛은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몬테스 알파 엠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쓰는 보로도 좌안(Left Bank)의 포도품종을 섞어서 만듭니다. 3개 빈티지 와인 모두 카베르네 소비뇽 80%, 카베르네 프랑 10%, 메를로 5%, 프티 베르도 5%의 비율로 블렌딩한 와인입니다.
지난 2012년 몬테스는 2004년 빈티지 보르도 블렌딩 와인들을 대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실시합니다. 이때 몬테스 알파 엠은 샤토 라피트 로칠드에 이어 2등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보르도 ‘그랑크뤼’ 수준의 프리미엄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칠레에서도 보르도 그랑크뤼 수준의 최고급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할 때 오른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그의 의지와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버티칼 테이스팅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세월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처럼 와인도 어린 시절이 있고, 숙성해서 최고의 시기가 있고, 절정의 시기가 지나면 맛이 꺾이기 시작합니다.
와인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칠레와인의 숙성 잠재력, 시음 적기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습니다.
시음 적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셔야 하는 최고급 구대륙 와인들과 달리 칠레의 최고급 와인들은 출시된 해에 바로 마셔도 뛰어난 숙성미를 보입니다. 밸런스가 좋아 타닌과 산도가 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마시기에 좋은 칠레 와인이 얼마나 오랜기간 버틸 수 있을지, 다시 말해 시음 적합시기(tasting window)를 얼마나 오래 가져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관심사입니다.
2015년 빈티지에 대해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은 “생산된 지 8년이 지나면서 병 안에서 우아하게 맛이 변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타닌의) 거친 느낌 없이 숙성됐고 여전히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young)’한 와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2010년 빈티지에 대해서는 “13년이 지났어도 건강하다. 숙성잠재력이 15~20년 정도는 충분히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빈티지별로 맛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빈티지가 워낙 강건하고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은 시음 적기 전에 마시면 타닌이 거칠고 산도가 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몬테스 알파 엠처럼 최고급 칠레 와인은 처음부터 밸런스를 잘 맞춥니다.
물론 2010년 빈티지가 2020년에 비해 10년간 병안에서 숙성되면서 타닌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꽉 쪼이는 타닌감이 살아있어 앞으로 10년 더 오래두고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들을 버티칼 테이스팅 해보면 ‘빈티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생산된 해의 기후조건에 따라 맛이 변화무쌍합니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을 고를 때는 좋았던 해, 나빴던 해를 기억해야 하는데 통상 이런 빈티지 포인트가 가격에 반영돼 있습니다. 무조건 오래된 것에 비례해 비싸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 칠레 와인은 빈티지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아무래도 날씨가 좋은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몬테스 알파 엠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2015년 빈티지가 살짝 더운 해에 만들진 것과 같은 느낌이 났지만 2020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미세합니다.
결론적으로 몬테스 알파 엠은 오래 숙성시킬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마셔도 맛있습니다. 또한 구조감이 단단해 시음 적기를 상당히 오래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1996년 몬테스 알파 엠의 맛은 어떠냐, 얼마나 오래 갈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몬테스 회장은 “와이너리에 1996년 빈티지가 몇 병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 와인 저장고에는 아직 6병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30년 가까이 된 몬테스 알파 엠 1996년 빈티지 와인에 대해 몬테스 회장은 “그 맛은 석양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몬테스 알파 엠은 보통 20년 까지는 아름답게 숙성한다. 그 후로는 지는 태양이다. 하지만 아름답게 지는 석양의 모습이다. 사람들에 따라 한낮의 쨍쨍한 태양을 좋아할 수도 있고 부드럽게 지는 석양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고 답했습니다.
몬테스 회장은 “칠레 와인은 영할 때도 마시기가 좋다. 좋은 포도가 좋은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물론 오늘 버티칼 테이스팅에서 맛본 것처럼 시간을 두고 마셔도 더욱 즐겁게 마실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임스 서클링과도 인터뷰에서도 신대륙 와인의 ‘숙성’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평론가들이 숙성된 맛을 선호하면서 구대륙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들 조차도 산소를 미세하게 주입해 인공적으로 ‘산화’된 맛을 구현하기도 합니다.
제임스 서클링은 “저장해 놓았다가 나중에 마실 와인보다는 지금 당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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