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남궁민-지승현 사이 ‘환향녀’ 안은진..뻔한 연정 ‘가련’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10. 1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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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주회인(走回人:도망하여 돌아온 사람)은 자복하라. 자복하지 않는 자와 주회인을 숨겨주는 자에겐 같은 률로 엄히 벌할 것이다... 우리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하여 돌아왔으나 남한산성의 조약이 엄중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스스로 목매어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족을 스스로 잘라 이별을 늦추려는 자도 있다. 게다가 관리들이 엄한 독촉에 쫓겨 친척을 거짓으로 잡아가고.. 그러나 조정에선 일일이 판별할 수 없어 원통함을 안은 채 사지로 끌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 이번 일을 당한 백성들이 아무리 나를 꾸짖고 원망한다 해도 이는 나의 죄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허나 나의 본심을 알아주어 흩어지거나 명을 어길 생각을 품지 말고 우리 200년 종묘사직이 한가닥 명맥이나마 이을 수 있도록 하라. 이것이 나의 소원이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 11화에서 인조(김종태 분)가 내린 포고령이다. 군왕무치(君王無恥)의 뻔뻔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목숨 걸고 도망온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내 소원이니 돌아가 달란다. 이 포고령이 실제 존재했던 원문인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6월 18일 기유 첫번째 기사는 “청나라가 징병·시녀 및 향화인(向化人)·주회인(走回人) 등의 일에 대하여 아직도 거행한다는 보고가 없다 하여 용골대와 마부달이 관소에 가서 세자를 보고 질책하는 말을 많이 하였으므로 세자가 빈객 박로를 보내 조정에 품의하였다.”고 적고 있다. 청나라가 주회인 송환 등의 문제로 조정을 핍박한 것이 사실이므로 인조라면 충분히 드라마에서 내건 포고령을 걸었음직 하다. 못난 군주, 못난 조정이 초래한 분노를 부르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환향녀(還鄕女)에 얽힌 슬픈 역사도 나온다. 11화에서 이장현(남궁민 분)은 심양의 왕부에서 의주시절 다정하게 지냈던 영랑(김서안 분)을 목격했다. 그녀를 빼내자고 할 때 양천(최무성 분)은 “이미 오랑캐들한테 몸버린 계집들 아니네. 조선에 가봤자 누가 사람 취급 해준다고 목숨 걸고 도망을 시키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우.”라고 질책한다. 양천은 또한 애기를 돌보느라 진땀 빼던 중 애기를 봐주겠다는 인옥(민지아 분)의 청도 거절한다. “일없다. 오랑캐에게 붙어먹은 계집이 어딜..”

도망길에 나선 영랑도 말한다. “이제 오라버니도 제가 별로죠? 몸 버린 계집.. 저는 오랑캐에게 이미..” 장현이 대꾸한다. “개에 물렸다고 몸을 버렸다고 할테냐? 미친 놈한테 한 대 맞았다고 맞은 자리가 더럽혀졌다고 할테야?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은 네 몸 버렸다는 생각 절대 안한다. 그러니 조선에 가거든 그런 멀쩡한 놈 만날 생각을 해.”

소현세자(김무준 분)는 장현 표현 ‘정신 제대로 박힌 놈’ 축에 들지 못했다. 12화에서 농사꾼을 충당하기 위해 심양의 포로시장을 방문한 소현세자는 현장의 참혹함을 목도하고 토한 후 한스럽게 말한다. “저 여인들은 어찌 죽지 않고 살아 저런 치욕을 당한단 말인가? 어찌 조선의 치욕이 되어..”

그런 세자에게 이장현(남궁민 분)이 싸늘하게 묻는다. “허면 조선의 전하께옵선 오랑캐에게 아홉 번이나 절한 치욕을 겪고도 어찌 살아계시옵니까? 왜 어떤 이의 치욕은 슬픔이고 어떤 자의 치욕은 왜 죽어 마땅한 죄이옵니까? 저하, 저들이 참으로 죽음으로써 치욕을 피했어야 한다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리 생각하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절 베십쇼.” 죽음을 대가로 얻어질 삶이란 어디에도 없다. 한 나라의 임금이든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로 끌려간 포로 수가 60만 명이고 그 중 여자만 50만 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환향녀들에겐 이혼 아니면 자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끊임없는 이혼 상소에 조정은 ‘포로로 끌려갔다고 모두 정절을 잃었다고 볼 수 없고 전쟁이란 급박한 상황을 감안하면 음탕한 행동으로 절개를 잃은 것과 비교할 수 없다’며 이혼 불허를 결정했다.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일컫는 ‘화냥년’, 그들이 낳은 오랑캐의 자식이란 의미의 ‘호로(胡奴)자식’은 ‘정신 제대로 못박힌’ 사회분위기가 만들어낸 비속어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 같은 비극이 유길채(안은진 분)에게도 닥쳤다. 납치돼 심양 왕부에 끌려왔고 훼절 위기를 자해하여 넘겼다. 대신 포로시장으로 팔려갔다. 포로들의 난동을 틈타 도망노비로 도주길에 나섰고 인간 사냥에 맛들인 각화(이청아 분)의 눈에 띄어 사선에 놓였다. 그리고 그런 각화를 만류하려 시위를 당긴 이장현의 눈에도 띈다.

심양까지 와서 해후할 두 사람을 보면 세상이 의외로 좁다기보단 꼭 만나야 될 사람들이어서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가련한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장현이 길채를 목격했으니 당장 길채는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책임감 강한 길채가 구원무(지승현 분)를 저버릴 턱 없으니 장현의 속앓이는 눈 앞에 두고도 계속될 것이다. 길채 역시 제 속정을 장현에 대한 염치와 남편에 대한 의무감으로 애써 억누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 사무친 가슴을 어이 속일까? 닿을 수 없는 뻔한 연정이 생채기가 되어 두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세상살이란 것이 원래 둘이서만 결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런 판에 구원무는 속환금을 장만해 심양길에 올랐다. 심양은 결국 장현과 길채 사이를 아는 구원무에게도 지옥이 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때론 증오만큼 위험할 수 있다.

환향녀 신세에 놓인 길채와 그녀를 연모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연인’의 뒷 얘기가 참으로 궁금하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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