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과·알·세] 로봇·AI 발전에도 과학은 세 분야뿐… 노벨 시대 멈춘 수상기준

이준기 2023. 10. 1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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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기준 혁신 필요성 제기
화학상 수상명단 유출 후 목소리 커져
과학분야에 물리·화학·생리의학상뿐
대중에 중요 과학분야 인식 왜곡 우려
1901년 시작된 노벨상이 123년의 역사를 맞아 수상자 선정 과정부터 시상에 이르는 전반에 걸쳐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왠지 모르게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 자칫 다른 세상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는 과학은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 스며들어있다. 인공지능(AI), 우주항공, 양자 , 첨단바이오, 신소재 등으로 세분화되고 융합되면서 과학의 영역은 점점 확장되고 우리 삶 곳곳에 깊게 파고들고 있다. 눈부신 과학 발전을 통해 우리는 복잡한 세상을 보다 명확하고 통찰력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과학을 좀 더 관심 있게 들여다 보며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을 찾고자 '이준기의 과·알·세(과학을 알면 세상이 보인다)' 코너를 마련했다.<편집자주>

우리나라 과학계는 10월이면 '노벨상 앓이'로 한차례 홍역을 겪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나라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올해 수상자를 보면 생리의학상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로 코로나 백신 개발에 기여한 헝가리 출신 카탈린 카리코 교수와 미국의 드루 와이즈먼 교수에게 돌아갔다. 물리학상은 아토초(100경분의 1초) 펄스로 전자의 미세한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제시한 피에르 아고스티니, 페렌츠 크라우스, 앤 룰리에 등 3명이 차지했다. 화학상은 양자점 발견과 합성에 기여한 문지 바웬디, 루이스 브루스, 알렉세이 예키모프 등 3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상은 1901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져 올해로 123년이 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노벨상은 그 나름의 전통와 형식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금세기 세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런 노벨상의 권위와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00년 이상 고수해 온 시상 전반을 현재의 과학 트렌드에 부합하게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에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주최 측의 실수로 수상자 명단이 사전 유출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노벨상 주최 측은 "수상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급히 해명했지만 수상자는 유출된 명단과 같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벨상이 변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세계 과학계와 언론을 통해 커지고 있다. 123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노벨상이 급변하는 과학발전의 흐름에 맞춰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속속 나오는 것이다.

우선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등으로 한정하고 있는 시상 분야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명한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는 노벨상이 환경 관련 과학이나 컴퓨터과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등 21세기 들어 중요해진 과학 분야를 배제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과학 분야가 중요한지 대중의 인식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화학자이자 화학 분야 과학사학자인 제프리 시먼 미국 리치먼드대 객원교수도 '모든 과학분야를 겨우 3개의 노벨상이 커버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뉴스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실어 변하지 않는 노벨상 시상 분야를 꼬집었다.

여기에 현대 과학이 융합연구를 하지 않고선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발견이 어려운데 물리, 화학, 생리의학상 등 3개 분야로 나눠 시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견과 함께 공동 수상을 3명으로 제한하는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과학자들이 집단 연구를 통해 오랜 기간 축적한 결과가 성과로 나오는데 수상자를 무 자르듯 3명으로 선정하는 기존 방식은 지금의 과학 트렌드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먼 교수는 "노벨상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돌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가·인종·성별 등의 측면에서 수상자를 좀 더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올해 4명의 여성이 노벨상(물리, 생리의학, 평화, 경제학)을 수상했음에도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6%에 그친다. 흑인은 2% 수준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것은 노벨과학상 분야 흑인 수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벨상이 북미와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가, 국적별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현대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본의 사토시 기타사토는 '디프테리아균'을 발견해 혈청을 만든 연구자였음에도 1901년 첫 노벨 생리의학상은 같은 연구실에 있던 독일 출신의 에밀 아돌프 폰 베링이 수상했다.

이 때문에 123년 역사의 노벨상이 후보자 선정 과정부터 시상 방식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현실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스웨덴 과학한림원 자문위원을 지낸 마크 지머 미 코네티컷대 교수는 "1901년 처음 노벨상이 수여됐지만, 오늘날보다 노벨이 살던 시대의 과학계와 더 닮아 있다"고 비판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언론 기고를 통해 "과학의 영역이 놀라울 정도로 확장됐고, 연구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123년 전통의 노벨상에도 혁신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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