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현·조현철, '여성 서사' 도전한 男 감독들 [N초점]

정유진 기자 2023. 10. 15.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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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서사·실화 소재…닮은 듯 다른 '발레리나'와 '너와 나'
이충현, 조현철 감독 / 사진=넷플릭스(이충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제공(조현철)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두 명의 젊은 남성 감독들이 '여성 서사'에 도전했다. 여전히 '남자 이야기'가 주류인 한국 영화계에서 이들이 펼쳐낸 특별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객들의 관심이 모인다. 두 편의 영화 모두 여자 주인공들의 관계를 밀접하게 다루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단편 영화 '몸값'(2015)과 장편 데뷔작 '콜'(2020)을 통해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른 이충현 감독은 신작 '발레리나'로 돌아왔다. '발레리나'는 경호원 출신 옥주(전종서 분)가 소중한 친구 민희(박유림 분)를 죽음으로 몰아간 최프로(김지훈 분)를 쫓으면서 펼치는 복수의 과정을 그린 액션 영화. 지난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발레리나'의 주인공은 웬만한 남성을 무력으로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경호원 출신 옥주다. 삭막한 삶을 살던 옥주는 우연히 재회한 어린 시절 친구 민희(박유림 분) 덕분에 생기 있는 나날을 보내지만, 민희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세상을 떠나버리게 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민희가 남긴 유언을 따라 옥주는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발레리나였던 민희의 꿈과 인생을 꺾어버린 남자 최프로에게 접근한다.

'발레리나' 포스터

'발레리나'는 기본적으로 옥주라는 한 여성의 복수극을 액션 장르의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옥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적 원동력은 세상을 떠난 친구 민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 민희와 옥주의 관계성은 플래시백을 통해 종종 등장한다.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듯한 두 여성의 관계를 영화의 전면에 배치한 점이 색다르다.

'발레리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버닝썬'이나 '박사방' 등 근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성 대상 성범죄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극중 마약 유통업(?)에 종사하는 최프로는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유인해 불법 성착취물을 만들고, 그것들을 이용해 협박을 일삼는 인물이다. 복수극인 만큼, 영화는 최프로에 대한 옥주의 통쾌한 복수로 끝나게 된다. 이충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 가지 특정 사건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쓸 시기에 국내외에 비슷한 류의 범죄들이 다수 발생했었다며 "디지털 성범죄, 여성 성착취에 관해서 통쾌하게 때려 부수는 느낌의 복수극을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영화로 눈 앞에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계기 및 차별점을 밝힌 바 있다.

'너와 나' 포스터

'D.P.'의 조석봉 역으로 인기를 끈 배우 조현철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 영화 '너와 나'는 두 여고생이 주인공인 드라마 장르 작품이다. 영화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주도 수학 여행을 하루 앞둔 날. 세미는 친구 하은이가 죽는 불길한 꿈을 꾸고,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있는 하은을 찾아간다. 다리를 다친 데다 빠듯한 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하은은 얼마 전 반려견을 잃었다. 세미는 하은에게 수학 여행을 같이 가자고 설득하고, 하은은 집에 있는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비를 마련해 보겠다고 한다.

'너와 나'에서 주목할 점은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이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가슴 아픈 실제 사건이 배경이 되자,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영화만의 사유와 감성이 피부에 와닿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예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 두 아이가 서로에 대해 가진 풋풋하지만 진솔한 마음을 확인해 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애틋하다.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꿈과 현실, 과거와 미래, 너와 나의 경계가 흐릿해진 가운데, 몽글하게 떠오르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영원성이 보는 이들에게 묘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조현철 감독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2016년에 개인적인 사건을 겪고 난 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고,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016년의 사건에서)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정의 세부 같은 것들이 우리가 아주 커다란 숫자로 뭉뚱그려 얘기하는 어떤 것(세월호 사건)에 세세하게 하나씩 다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되게 다르게 다가오더라"며 "사람들은 이걸 굳이 끄집어 내서 기억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의지를 떠나 이걸 기억하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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