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불법 공매도 70%가 외국인…글로벌IB 400억 규모 불법공매도 최초 적발 [주말엔]

김혜주 2023. 10.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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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空賣渡. '없는 것을 판다'는 뜻으로,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특정 주식 종목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1) 남에게서 주식을 빌린 뒤 2) 이를 팔고 3) 그 대금으로 주식을 다시 사서 4) 갚는 주문 형태를 의미합니다.

굳이 빌려서까지 주식을 팔았다가 다시 사서 갚는 이유, '차익' 때문입니다. 주가가 하락할 거라는 예측을 제대로 한다면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측을 잘못한다면 손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심각한 경우 빌린 주식을 갚지 못하는 '결제 불이행'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시장 전체로 확산할 경우 시장이 불안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기로 확정한 뒤 파는 '차입 공매도'와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미리 파는 '무차입 공매도'로 나뉩니다. 우리 정부는 2000년 4월 공매도한 주식이 결제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한 뒤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 사례를 적발했습니다. 주체는 글로벌 투자은행 두 곳이었는데, 글로벌 투자은행의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부서 상호 대차시 중복 계산'…101개 종목 대상 400억 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

먼저 적발된 곳은 홍콩 소재의 A 사입니다.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 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사는 회사 내부에서 여러 부서를 운영하며 부서간 주식을 빌리는 과정에서, 해당 내역을 시스템에 제대로 입력하지 않고 중복 계산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예를 들어 a 부서가 가진 100개의 주식 중 50개를 b 부서에게 빌려줬다면 a 부서의 주식은 빌려주고 남은 50개, b 부서의 주식은 빌려온 50개로 각각 시스템에 입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A 사는 a 부서의 주식 잔고는 빌려주기 전인 100개로 입력하고, b 부서의 주식 잔고는 빌려온 뒤인 50개로 입력하면서 50개를 중복 계산한 겁니다.

이렇게 중복 입력돼 부풀려진 주식 잔고를 기초로 매도 주문을 내면, 실제 가진 것 보다 많이 파는 셈이 되어 결제 수량이 부족하게 됩니다.

금감원은 "A 사가 '결제수량 부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원인을 밝히거나 시정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모자란 주식만큼 사후 차입하는 방식으로 위법행위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금감원 조사 결과 A 사의 계열사인 국내 한 수탁 증권사도 A 사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지속적으로 수탁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금감원은 "A 사와 공매도 포지션·대차내역을 매일 공유하고, 결제 가능 여부 확인 과정에서 잔고 부족이 지속적으로 발생했음에도 결제 이행 촉구 외에 원인 파악 및 사전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향후 빌릴 수 있을 것 같은 수량 기준으로 계약'…9개 종목 대상 160억 원 규모 무차입 공매도

마찬가지로 홍콩을 소재지로 하는 B 사입니다. 2021년 8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9개 종목, 160억 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나라는 먼저 주식을 빌린 뒤 매도하는 '차입 공매도'만을 허용하고 있는데요. B 사가 주식을 빌린 건, 매도 주문을 낸 뒤였습니다.

금감원 조사 결과 B 사는 '빌릴 수 있는 수량'을 먼저 조사해 이를 바탕으로 매도 주문을 하고, 주문이 체결되면 주식을 빌려오는 방식으로 내부 시스템을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감원은 B 사에 대해 위법행위, 그러니까 무차입 공매도를 방치했다고 판단했는데요. 적발 이후 B 사는 주식을 빌리기로 확정된 수량을 기준으로 공매도 주문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 올해 9월까지 불법 공매도 70%가 외국인…최근 13년간 약 90%가 외국인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불법 공매도는 이미 오래된 문제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14년간 불법 공매도 위반자 수는 모두 174건입니다. 이 가운데 외국기관은 156곳으로 전체의 89%가 넘습니다.

최근 4년만 놓고 보면 2020년 4건이던 불법 공매도 적발 사례는 올해 9월까지 30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불법 공매도로 적발된 외국인은 2020년 4명, 2021년 14명, 2022년 25명, 올해는 2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감독당국은 불법 공매도를 근절하겠다며 전담 조사팀까지 꾸렸습니다. 금감원은 조사 전담반이 꾸려진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모두 51개사의 무차입 공매도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고, 93억 7천만 원의 과징금과 21억 5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습니다. 불법 공매도 집중 조사로 악재성 정보가 공개되기 전 무차입 공매도를 하는 등 고의적 공매도 거래도 최초로 적발했다고 자평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高 악재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합니다. 증시 하락에 배팅하는 공매도 참여자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감독당국이 불법 공매도 단속 강화 방침을 세운 이유입니다.


■ 금감원 "적발 기업에 엄중 조차…유사한 글로벌 IB로 조사 확대 예정"

금융감독원은 이번 조사로 적발된 기업 두 곳에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은 PBS업무(고객에게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를 제공하는 글로벌 IB의 장기간에 걸친 불법 공매도로, 2023년 과징금제도 도입 이후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가 예상된다"며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엄중한 제재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제재 대상에게는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개선 등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번에 적발된 회사와 유사한 영업을 하는 주요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금감원은 "일부 IB의 경우 주식 시장이 열리기 전 소유한 주식 수량보다 많은 수량을 매도하는 등 장기간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정황이 발견돼 조사하고 있다"며 "다른 IB에 대해서도 이상거래 발견시 즉시 조사에 착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증권사에 대한 검사도 강화할 방침입니다.

금감원은 "글로벌 IB로부터 주문을 수탁받는 국내 증권사는 계열회사 관계, 수수료 수입 등 이해관계로 위탁자의 위법행위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며 "공매도 주문 수탁 프로세스, 불법공매도 주문 인지 가능 여부 등을 면밀히 점검해 위법사항이 발견되면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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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 기자 (k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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