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에 눈멀어서"…해외IB 불법 공매도, 사실로 드러나
금감원 "최대 규모 과징금으로 엄벌…조사 확대"
(서울=뉴스1) 박승희 강은성 기자 = 그간 시장에서 '의혹'이 난무했던 글로벌 투자은행(IB)의 관행적이고 고의적인 불법 공매도 행위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홍콩 소재 글로벌IB 2개사(社)가 관행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자행한 사실을 확인하고 '최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엄벌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해당 회사가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관행적으로 해 왔다고 판단했다.
15일 금감원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공매도(매도스와프) 등 국내 주식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IB 2개 사가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하고 사후에 차입하는 방식 등으로 불법 공매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국내 공매도 제도는 주식을 빌린 이후 매도를 내는 '차입공매도'만 허용하고 있으며 무차입 공매도는 불법으로 엄격히 규제한다.
이번에 적발된 홍콩 소재 글로벌 IB 중 A사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IB는 국내 투자자에게 직접 주식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PBS(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고객이 보유 주식에 대해 매도 주문을 요청하면 매도스와프(TRS) 주문을 내게 된다. 아울러 회사가 보유한 주식도 헤지(Hedge; 위험상쇄) 차원에서 공매도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사가 보유한 주식보다 많은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무차입) 매도하고, 다음날 사후정산 과정에서 뒤늦게 주식을 사 채워넣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주식거래 결산 자체가 T+2일, 즉 거래 체결 후 2일째에 주식 잔고를 맞추는 최종 작업이 이뤄진다는 점을 악용했다.
김정태 금감원 공시조사 부원장보는 "A사는 매도스와프 주문을 내는 과정에서 100주만 보유하고 있었다면, 보유한 주식 100주와, 빌리지도 않은 주식 100주를 추가로 매도해 총 200주의 매도 주문을 냈다"면서 "해당 회사는 국내 공매도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으며 무차입 공매도가 불법이라는 점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장기간 불법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우 금감원 조사2국장도 "스와프 거래를 하면 수수료 수익이 있는데, 예를들어 100주만 해야 하는데 200주를 하게 되면 두 배의 수수료 수익이 발생한다"며 "200주를 차입하고 그만큼 매도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200주까지 계약을 체결한 뒤 막상 체결된 150주 헤지 주문 분만 차입하면 200주를 미리 차입한 것보다 비용이 절약돼 양쪽으로 수익이 발생하고 비용은 줄이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수수료 수익 극대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A사가 저지른 무차입 불법 공매도 규모는 4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또 A사의 국내 계열사(한국 법인)도 수탁업무 과정에서 이를 방조하고 관행적으로 불법 행위를 도운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위탁자와 공매도포지션·대차내역을 매일 공유하고, 결제가능여부 확인 과정에서 잔고 부족이 계속 발생했는데도 결제 이행 촉구 외에 원인 파악을 하거나 사전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B사는 2021년 8월~2021년 12월 중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B사 역시 A사와 유사한 형태의 무차입 불법공매도였다.
기관투자자들의 매도스와프계약을 헤지하기 위해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차입이 확정된 주식 수량이 아닌 향후 차입 가능한 한도 내에서 시장에 주문을 냈다. 이후 대차 담당자가 주문이 체결된 만큼 외부기관으로부터 차입을 확정했다.
다만 B사는 금감원의 조사가 진행된 이후 불법 사실을 인정하고, 시스템 보완 및 재발방지 등을 약속했다.
금감원은 이들 회사가 수수료 수익과 비용 절감을 위해 무차입 공매도가 지속되는 것을 알면서도 시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김 부원장보는 "혐의 입증과 증거 확보를 위해 조사 기간을 특정할 수밖에 없고, 이 기간 '찾아낸' 무차입 불법 공매도가 400억원, 160억원 규모라는 것"이라면서 "글로벌IB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많은데, 이번에 혐의를 적발한 이상 사상 최대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해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불법 공매도에 대한 과징금이 도입된 이후 가장 큰 금액은 38억원 정도다. 더구나 그간 적발된 불법 공매도의 경우 대부분 '착오'나 '실수'로 볼 수 있는 측면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고의적'으로 '장기간' 불법을 저지른 정황이 포착된 만큼 종전 과징금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최대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과징금 정도가 바뀔 수 있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된 회사와 유사한 영업을 영위하는 주요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일부 IB의 경우 장개시 전 소유수량보다 많은 수량을 매도하는 등 장기간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정황이 발견돼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홍콩 SFC 등 해외 감독당국과도 공조한다.
글로벌 IB로부터 주문을 수탁받는 국내 증권사 사례도 적발된 만큼, 국내 증권사들에 대한 검사도 강화한다. 계열회사 관계, 수수료 수입 등 이해관계로 위탁자의 위법행위를 묵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으다. 공매도 주문 수탁 프로세스, 불법공매도 주문 인지 가능 여부 등을 점검한다.
김 부원장보는 "그간 외국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투자환경 조성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IB의 위반행위가 발견되어 엄정한 조치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며 "향후 유사한 글로벌 IB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하고, 수탁 증권회사의 위반가능성 여부 등에 대해서도 검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eungh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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