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지옥입니다”…직장 내 괴롭힘 경험, 계속 늘고 있다

조해람 기자 2023. 10. 15. 12: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36% “직장갑질 경험”
불이익 우려에 신고조차 못해
Gettyimage

“쓰레기” “역적”…. 직장인 A씨 회사의 사장이 회의·근무시간에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서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면전에서 구겨 바닥에 버린다. 직원들 앞에서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A씨는 “매출 실적이 부족하다며 근로계약서와는 달리 오전 7시 출근을 강요하고, 퇴근시간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B씨도 ‘역적’이 됐다. 음주운전 차량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가를 썼더니 회사는 “행정을 마비시킨 사람”이라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회의에서도 서 있어야 했다. B씨는 “친분 있는 직원을 시켜 다른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녹음하거나 기록하게 해서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정말이지 살고 싶다. 이곳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직장인 35.9%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경험 비율은 최근 1년 3개월동안 계속 올랐다. 비정규직·저임금·저연차 등 ‘노동 약자’일수록 심각성을 크게 느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4일~11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조사는 여론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수행했고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Gettyimage

직장갑질119가 2022년 6월 진행 한 조사에서 29.6%를 기록했던 ‘괴롭힘 경험 비율’은 2023년 3월 같은 조사에서 30.1%, 6월 33.3%로 계속 상승했다. 유형별로 보면 ‘모욕·명예훼손’(22.2%)이 가장 많았다. 이어 ‘부당지시’(20.8%) ‘폭언·폭행’(17.2%) ‘업무 외 강요’(16.1%) ‘따돌림·차별’(15.4%) 등 순이었다.

괴롭힘 경험자의 46.5%는 ‘괴롭힘 수준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정규직(41.1%)보다 비정규직(55.0%)이 심각성을 더 크게 느꼈고, 비정규직 여성의 응답이 61.2%로 가장 두드러졌다. 소득별로는 월 150만원 미만(58.3%)이, 직급별로는 가장 낮은 일반사원급(56.1%)의 경험 비율이 가장 높았다.

괴롭힘 경험자 10명 중 1명(10.9%)은 괴롭힘을 당한 뒤 자해나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 자해·극단선택 고민 비율은 비정규직이 20.0%로 정규직(5.0%)의 4배에 달했다. 20대(16.4%), 비사무직(13.9%), 5인 미만 사업장(15.1%), 교대제(16.2%), 월 150만원 미만(16.7%) 등 ‘노동 약자’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괴롭힘 경험자 35.7%는 ‘우울증·불면증 등 정신적인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고, 18.9%는 ‘신체적인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다.

Gettyimage

괴롭힘 경험자 대다수가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고 참거나 회사를 그만뒀다. 괴롭힘 경험자 중 6.7%만 ‘회사 또는 노조에 신고했다’고 답했다(중복응답). ‘고용노동부·국가인권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등 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도 5.3%에 그쳤다.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이 65.7%로 가장 높았다. 27.3%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 비율은 초단시간노동자(48.1%), 5인 미만 사업장(47.2%), 일반사원(42.4%), 비정규직(42.9%), 여성(33.1%) 등 노동 약자에서 높았다.

신고하지 못한 이유로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7.2%로 가장 높았다. 신고한 응답자도 67.9%는 ‘신고 이후 회사가 피해자 보호 등의 조사·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26.8%는 ‘신고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치의무 위반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불리한 처우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국민 절대다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92.0%, ‘간접고용·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93.1%에 달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근로기준법에 포함돼 있어 5인 미만 사업장이나 간접·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청년특위 정책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직장갑질119는 “지금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반쪽짜리 법을 방치한 채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5인 미만 등 일터 약자일수록 직장 내 괴롭힘을 더 많이 당하고 신고나 대처가 어렵다는 것은 여러 번의 설문에서 계속 확인되고 있다”며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 구제절차 지원시스템도 함께 마련돼야 피해 신고 등 대응도 그나마 가능해진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