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선물했더니 골프채 채워 돌려줘”…‘명장’ 류중일 ‘골프 고수’된 사연[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3. 10. 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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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을 이끈 류중일 감독이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를 배경으로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대구=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류중일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60)은 이달 초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한국 대표팀은 이달 초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조별리그에서 대만에 0-4로 완패하며 금메달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후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을 꺾은 데 이어 결승에서 다시 만난 대만에 2-0으로 승리하며 아시안게임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건 이번에 3번째였다.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를 하고도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5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번 대회까지 포함해 그는 국제대회에서 실패보다 성공이 많은 지도자가 됐다.

천신만고 끝에 항정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낸 류중일 감독이 그라운드를 걸어 나오고 있다. 항저우=뉴시스

선수 시절부터 그는 ‘꽃길’을 걸었다. 경북고 2학년이던 1981년에는 팀의 톱타자와 유격수로 나서 전국대회 4관왕의 주역이 됐다. 고3이던 1982월 7월 17일 서울 잠실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린 부산고와의 경기에서는 홈런을 쳐내며 잠실구장 개장 1호 홈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1987년 프로야구 삼성에 입단한 후로도 명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공격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수비 능력과 야구 센스에 관한 한 당대 최고라 할 만했다. 1987년과 1991년에는 롤모델이었던 김재박을 넘어 두 차례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차지했다. 그는 1999년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13년간 삼성의 푸른색 유니폼만 입었다.

인생의 꽃을 더욱 활짝 피운 것은 지도자가 된 이후다. 삼성 수비코치 등을 거쳐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오른 그는 그해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을 모두 제패했다. 4년 연속 통합우승은 40년 넘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한국 야구가 각각 4강과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6년 제1회 WBC와 2009년 제2회 WBC에서는 대표팀 수비 코치로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선수로 13년, 지도자로 14년 등 27년간 삼성 유니폼만 입었던 그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은 LG 감독도 맡았다. 재임 기간 동안 우승은 없었지만 두 차례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류중일 감독(당시 삼성 3루 코치)가 2003년 56호 홈런을 때린 이승엽을 축하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DB

50년 가까이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몸담고 있지만 그는 언제나 유쾌한 사람이다. 대화 중 터뜨리곤 하는 호탕한 웃음의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지도 스타일도 강압적이기보다는 부드럽고 원만하다. 선수들과는 농담을 섞어 대화를 나누곤 한다. 팬들은 그를 ‘살구 아재’란 친숙한 별명으로 부른다.

2011년 처음 감독이 되었을 때만 해도 최연소 감독이었던 그도 어느덧 환갑이 됐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표정이 깃든 그의 얼굴은 전혀 60대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탄탄한 몸매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나름 인생이 재미있다. 국가대표 감독 자리는 여전히 큰 설렘을 안겨준다. 시간이 있을 때는 지인들과 간단히 술자리를 가지며 회포를 풀기도 한다”고 했다.

2021년 무릎 수술을 받은 류중일 감독이 이후 건강 관리에 더 신경을 쓴다. 무리가 되지 않는 걷기와 트레킹을 종종 한다. 류중일 감독 제공

그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다. 2021년 초 오른쪽 무릎 연골이 찢어져 수술대에 오른 뒤부터다. 그는 “선수 때도 한 번도 수술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뒤늦게 수술을 받고 침대에 누워 있다 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움직이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 2시간 안팎을 운동에 할애한다.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한 시간가량을 걷는다. 이후 30분 정도 근력 운동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빠지기 쉬운 하체와 엉덩이 부위 운동을 주로 한다. 칼을 댔던 무릎 보강 훈련도 하고, 코어 운동도 한다. 운동을 모두 마친 뒤에는 30~40분 정도의 사우나로 마무리한다. 그는 “본격적으로 피트니스 센터에 다닌 지 이제 2년 정도가 됐다. 운동을 하면 몸이 더 피곤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피로가 확 가신다. 확실히 몸이 좋아지고 가벼워진다. 앞으로도 꾸준히 운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헹가레를 받고 있는 류중일 감독. 동아일보 DB

이전부터도 그는 운동을 좋아하고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선수 시절 그는 배드민턴과 스쿼시를 즐겨 했다. 당시만 해도 건강 관리보다는 순발력을 키우려는 목적이 컸다. 그는 “시즌이 끝난 뒤 겨울에는 실내에서 배드민턴과 스쿼시를 치면서 순발력을 유지하려 했다. 두 종목 모두 정말 운동이 많이 된다. 특히 랠리가 되기 시작하면 운동 효과가 훨씬 커진다”고 했다.

그는 하체 강화를 위해 자전거도 많이 탔다. 선수에서 은퇴한 뒤엔 인라인스케이트도 열심히 타곤 했다. LG 감독 시절 그는 경기 후 혼자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서울 한강 자전거도로를 누비곤 했다. 그는 “내 나이에 한강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 살고있는 대구에서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대구도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 자전거도 함께 타보고 싶다”며 웃었다.

야구계의 유명한 골프 고수인 그는 지인들과 골프도 종종 즐긴다. 싱글 플레이어인 그는 대부분 70대 타수를 친다.

베스트 스코어는 작년 경북 구미CC에서 기록한 4언더파 68타다. 그는 “뭐에 홀린 듯이 잘되는 날이 있지 않나. 그날이 바로 그랬다. 전반에만 이글 1개와 버디 3개를 잡았다”고 했다. 이전에도 한 번 68타를 친 적도 있다. 요즘도 드라이버를 220~230m정도 보낸다는 그는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까 비거리가 줄더라. 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류중일 감독의 드라이버샷 모습. 타자 출신임에도 스윙이 자연스럽다. 류중일 감독 제공

자타가 공인하는 골프 고수인 그는 뜻밖의 계기로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제1회 한일 슈퍼게임에 출전했는데 어떤 경기에서 우수 선수로 뽑혀 상품으로 캐디백과 보스턴백을 받았다.

당시 골프를 치지 않았던 그는 이 백들을 장인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장인은 “내가 골프를 쳐 봐야 얼마나 더 치겠나. 이젠 자네가 열심히 치게”라며 이 백들을 그대로 돌려줬다. 골프백에 골프채를 채워 넣으라며 현금 100만 원도 함께 줬다. 장인 덕에 골프의 길에 들어선 그는 단숨에 골프 고수가 됐다. 그는 골프의 매력에 대해 “내가 홈런 타자도 아니었지만 야구는 아무리 멀리 때려도 100m 정도 나간다. 그런데 골프는 가볍게 쳐도 200m 넘게 날아가더라. 그렇게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1년 야구인 골프대회에서 퍼팅 라인을 읽고 있는 류중일 감독(왼쪽). 류 감독은 드라이버, 아이언, 쇼트 게임에 모두 능숙하다. 동아일보 DB

천상 야구인인 그는 향후 인생에서도 한국 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목표다. 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특히 일본 선수들이 야구를 대하는 자세와 기본기에 충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자라나는 야구 후배들에게 내가 야구를 해오면서 느낀 부분들을 알려 주고 싶다. 어린 선수들을 위한 야구 교실 등도 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야구를 쫒아 다니느라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 그래서 요즘 동갑내기 아내(배태연 씨)와 한 달에 한 번을 함께 필드에 나간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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