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하고 '무차입 공매도'로 재미본 '글로벌IB' 2곳 적발
T+1일 공매도 하고 T+2일 주식 빌리는 방식 이용
공매도 한 뒤 나중에 주식 빌려 비용 절감하기도
금감원 "역대 최대 규모 과징금 부과 조치 할 것"
주식을 빌리지 않은 채 불법 공매도를 한 외국계 금융사가 또 적발됐다. 다른 부서에 주식을 빌려줘 놓고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 보유한 주식수량을 기존보다 부풀려 공매도 주문을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외국계 금융사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을 넣고 추후에 주식을 빌리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지금까지 적발해온 외국계 금융사의 불법 공매도와 달리 이번 사안은 불법 공매도의 '의도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향후 심의를 거쳐 이들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외국계 금융사의 주문을 수탁 받은 국내 증권사(외국계 증권사의 계열사)도 제재 조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12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주요 외국계 금융사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 적발내용을 공개하고 향후 이들에 대한 처리방안 계획을 발표했다.
금감원이 불법 공매도 혐의로 적발한 글로벌 IB(투자은행)는 2개사다. 이들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공매도(매도스왑) 등 국내 주식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개업자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공매도하려면 반드시 글로벌 IB(매도스왑거래 체결)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IB 2곳은 의도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보유주식 부풀려 공매도하고 수수료 수익 거둬
홍콩에 소재한 A사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 중 국내 101개 종목에 대해 400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A사는 다수의 내부부서를 운영하면서 필요 시 부서 간 주식을 빌려주고 빌리는 대차거래방식을 거쳤는데 이 과정에서 주식을 빌려준 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주식 100주를 보유한 ⓐ부서가 이 중 50주를 ⓑ부서에 빌려줬다. 하지만 ⓐ부서는 빌려준 내역을 시스템에 입력하지 않아 기존과 똑같이 ⓐ부서의 주식보유수량을 100주로 인식했다. 이 과정에서 ⓑ부서는 ⓐ부서로부터 빌린 50주를 신규 잔고로 인식했고 A사는 ⓐ부서 및 ⓑ부서의 주식수량을 합한 150주의 주식을 공매도했다. 결과적으로 ⓑ부서가 빌린 50주는 무차입 공매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무차입 공매도가 이루어진 50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매매일(T)+2' 결제시스템을 이용했다. 매매일(T)에 무차입 공매도를 한 뒤 'T+1일'에 부족한 50주에 대한 외부 차입을 하고 'T+2'일에는 이를 정상 차입 공매도로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엔드클라이언트(공매도 스왑주문을 넣은 고객)가 글로벌 IB와 매도스왑(TRS)을 체결하면 글로벌 IB는 주문 받은 대로 공매도를 넣으면 되는데 이 단계에서 글로벌 IB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주문받은 수량보다 더 많은 수량을 공매도 했다"며 "오늘 공매도 해놓고 내일까지만 그 수량을 사면된다는 식으로 불법 공매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T+1일에 지속적으로 결제수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글로벌 IB A사의 계열사인 국내 수탁증권사는 이에 대한 결제이행 촉구 외에 원인파악 및 사전예방 조치 등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T+1일부터 T+2일까지 위탁자의 매매내역, 주식잔고, 결제지시서 일치여부 등을 확인하는 프리매치 과정이 있음에도 이를 알고도 묵인한 셈이다.
주식 아직 빌리지도 않고...공매도
홍콩소재 B사 역시 주식을 온전히 빌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 이 회사는 2021년 8월부터 2021년 12월 중 국내 9개 종목에 대해 160억원 상당의 무차입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B사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매도스왑계약을 헤지(위험해피)하기 위해 공매도 주문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차입이 확정된 주식수량이 아닌 향후 차입 가능한 수량을 기준으로 공매도 주문을 넣었다. 이후 체결된 공매도 수량(기존보다 더 많은 수량)을 기준으로 차입계약을 사후에 확정하면서 내부시스템을 운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고객으로부터 50주의 매도스왑 주문을 받으면 B사는 실시간으로 주식을 빌릴 수 있는 추가 물량을 확인했다.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50주면 B사는 고객주문물량과 빌릴 수 있는 물량을 더해 총 100주에 대해 공매도 주문을 넣었다. 이후 대차 담당자는 고객주문물량을 제외하고 나머지 추가 물량(50주)에 대해 차입계약을 한 것으로 내부시스템을 운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B사는 당국의 불법 공매도 적발 이후 차입이 확정된 수량을 기준으로 매도스왑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수량만큼만 공매도 주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떨어져 얻을 이익 없는데 왜?
동학개미가 공매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주가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시스템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저평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는 대량의 무차입 공매도는 동학개미들이 개선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 금감원이 적발한 글로벌 IB 2곳은 공매도가 노리는 효과 즉, 국내 종목의 주가하락으로 이익을 볼 주체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해외 기관투자자 등 고객의 주문을 받아 이를 대신 처리해주는 중개자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무차입 공매도를 이용한 것은 공매도 수량이 많을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고객으로부터 100주만 주문 받았음에도 추가로 100주를 더 하면 그만큼 글로벌 IB가 가져갈 수수료 수익도 증가한다.
또 차입거래 과정에서도 미리 빌리는 것보다 빌릴 수 있는 주식수량을 먼저 공매도하고 실질적으로 매도된 수량만 사후에 확정해 차입계약을 하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결국 공매도를 수탁 받는 과정에서 수수료 수익과 비용절감 모두를 취하기 위해 무차입 공매도를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번에 적발한 글로벌 IB 2곳은 의도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고 보고 있다.
김정태 부원장보는 "그동안 적발한 외국계 금융사의 무차입 공매도는 단순 착오나 실수, 1회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적발한 2곳은 장기간 많은 종목을 대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공매도 제도가 많이 논란이 됐는데도 대규모의 글로벌 IB가 우리나라 공매도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 부원장보는 "결국 안 걸릴 줄 알고 무차입 공매도를 한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대 과징금 38억…이번에는 100억 넘을까?
이번에 적발한 글로벌 IB 2곳의 제재 수위는 향후 금감원의 제재조치,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현재까지 외국계 금융사 중 불법 공매도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곳은 오스트리아 금융회사 ESK자산운용(에르스테에셋매니지먼트 GmbH)이다.
지난 3월 증선위로부터 과징금 38억7400만원을 부과 받았다. ESK자산운용은 법 위반의 고의가 아닌 과실이었음을 인정받아 기존보다 과징금 수위가 내려갔다.
다만 이번에 적발한 글로벌 IB 2곳은 ESK자산운용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과징금을 부과받을 것으로 보인다.
100억원을 넘을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정태 부원장보는 "앞서 부과한 최대 규모의 과징금(ESK자산운용이 받은 38억7400만원)보다는 높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금융당국은 잔고가 부족한 것을 인지했음에도 수탁을 진행한 국내 수탁증권사도 제재조치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향후 다른 글로벌 IB에 대해서도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 거래를 발견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IB로부터 주문을 수탁 받는 국내 증권사에 대한 검사도 강화한다. 금감원은 필요 시 해외감독당국과 긴밀한 공조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불법공매도 엄단 및 자본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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