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가 위선자였으면 했다”···‘데블스 플랜’ 정종연 PD[인터뷰]
총 12부로 구성된 <데블스 플랜>이 지난 10일 모두 공개됐다. <더 지니어스> <여고 추리반> <대탈출> 등 인기 두뇌 서바이벌 장르물을 제작해온 정종연 PD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다. 12명의 참가자가 최대 5억원의 상금을 걸고 게임을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데블스 플랜>은 공개 직후 국내외 넷플릭스 콘텐츠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정 PD를 만났다.
<데블스 플랜>에는 각기 다른 직업, 성향을 가진 12명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눈에 띄는 캐릭터는 과학 유튜버인 궤도다. 궤도는 ‘너 아니면 나 죽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다 같이 살아봅시다’ 라고 말하는 캐릭터다. 게임 구조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전략도 잘 세우는데, 그 능력을 본인의 승리에 활용하기보단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뒤쳐진 사람을 도와주는데 쓴다.
<데블스 플랜>의 게임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 플레이해서는 이기기 어려운 구조로 짜여졌다.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돕고, 나도 도움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출연자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연합 전선이 형성된다. 궤도의 철학에 동의하는 사람, 동의하진 않아도 도움은 받고 싶은 사람들이 뭉쳐 다수가 되면서 게임의 판이 흔들린다. 궤도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는 공격적인 캐릭터보다, ‘우리 같이 살자’고 주장하는 캐릭터가 게임의 흐름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 PD는 이것을 의도했을까?
“궤도, 경쟁적이지 않은 줄은 알았지만...”
정 PD는 “사전 인터뷰에서 궤도가 굉장히 경쟁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예 게임 방향을 그렇게 잡을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불안감은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궤도는 위선자다 (착한 척 했다가 나중에 다 배신할 것이다)’ 라는 프레임이 있던데, 솔직히 저도 개인 인터뷰에서 (궤도가) ‘실은 제가 가지고 놀았죠’ 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궤도가 자신의 철학을 갖고, 일관성이 있는 플레이를 했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처음 보는 플레이였으니까. 기존 서바이벌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라인이 등장했다는 의미는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궤도의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는 시청자들 사이에도 호불호가 갈렸다. 궤도가 끌어준 탓에 ‘무임승차’ 하는 플레이어들이 생겼다, 경쟁을 보는 재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 PD는 꼭 그렇게 보진 않는다. “사실 궤도의 공리주의가 게임을 망쳤다, 혹은 정당한 결과를 얻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 것은 ‘동물원 게임’ 밖에 없다.” 동물원 게임에서는 궤도가 탈락 위기인 출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짠 전략 때문에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감옥에 가고, 공동 우승자가 발생해 아무도 게임 속 화폐 ‘피스’를 많이 못 가져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궤도가 자신의 게임 플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고, 결국 연합도 찢어졌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공리주의에 대한 질문과 답이 다 나오는 회차였다.”
“상금 나눠먹기, 출연자 계약에 금지돼 있어”
정 PD는 <데블스 플랜>에는 <더 지니어스>때와 달리 최하위권이 탈락 직전 마지막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데스매치’ 같은 장치를 따로 넣지 않았다. “제가 만들었지만 데스매치는 좋은 포맷이라고 생각한다. 강자든, 약자든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중요한 균형을 잡아주는 포맷이기도 하다. 다만 저는 그게 <더 지니어스>의 핵심 IP(지식재산권)라고 생각했다. 꼴찌가 데스매치 상대를 지목하는 형식 등 규칙 패키지 자체가 <더 지니어스>의 IP다. 그 IP는 건드리지 않고 싶었다. 그걸 하면 너무 <더 지니어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블스 플랜>의 최종 승자는 배우 하석진이다. 정 PD는 하석진에 대해 “굉장히 위기관리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출연진들이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하석진에 대해서는 ‘굳이?’ 라는 말로 표현했다. 굳이 위험한 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석진을 보며) 초반에 ‘(게임에) 확 빠져들지를 않네’ 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김동재가 떨어지는 순간, 동물원 게임을 지나는 과정, 피스의 비밀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하석진씨의 승부욕에 스위치가 눌려서 흥미로웠다.”
일부에서는 공고한 연합 전선에 억대의 상금을 ‘나눠먹기’하려는 속셈이 있지 않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게임에서 ‘상금 나누기’ 행위는 금지돼 있다. 정 PD는 “출연자 계약에 상금을 나누는 행위를 못하게 되어있다. 이건 외국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계약 조항이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는 일반 대중에게 상금 나누는 행위가 포착돼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된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
“시즌 2, 안하기엔 너무 많이 생각해”
짧은 출연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 대학생 김동재, 최종 4인까지 간 미국 정형외과 의사 서유민은 지난해 제작진이 모집한 일반인 출연자들이다. 제작진은 필기 통과자 중 300명 이상을 면접 본 뒤 두 사람을 선발했다. 정 PD는 “일반인 출연자는 조금 공격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것 같은 이들을 찾았는데, 막상 면접에서 그런 성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중반까지는 암약해 있다가 나중에 반전을 일으키겠다’는 멘트가 거의 고정으로 나온다. 어쨌든 자기가 ‘승자’가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뽑았다.”
<데블스 플랜>에는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마피아 게임’을 복잡하게 변형한 게임부터 규칙 레이스, 헥사콘, 포커를 변형한 게임 등 20가지가 넘는 게임이 등장한다. 이 게임들은 모두 제작진이 직접 제작했다. “사실 진짜 힘들긴 하다. 우리끼리 테스트하고, 테스터들 고용해서 테스트를 돌리기도 한다. 너무 쉬워도 안되고, 너무 어려워도 안되는 ‘밸런스 맞추기’가 늘 고민이다. 앞으로는 외주도 좀 쓰고 해야겠다. 아이디어 측면에서 도움이 필요하겠다는 고민은 하고 있다.”
<더 지니어스>부터 <대탈출> 시리즈까지, 정 PD의 전작들은 대부분 시즌 2, 3으로 이어졌다. <데블스 플랜>은 도 시즌 2를 볼 수 있을까. “결정은 넷플릭스가 한 다음에 제가 하는건데, 제 입장에서는 안 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생각을 해놨다. 기다리고 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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