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여민동락의 상징,오늘 가슴 벅찬 공개

2023. 10. 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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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왕과 국민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곳,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상징,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가 드디어 15일 복원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6시 복원식을 열고, 월대를 공개한다.

돌아가는 광화문. 국민은 월대복원의 기대감, 뿌듯함으로 불편을 감수했다.
21세기 월대.

오후 5시에 열리는 식전행사에서는 광화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광화문답’이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의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고, 오후6시에 본행사가 열린다.

▶미디어아트와 하모니= 복원식에는 ▷‘광화등’ 점등식(월대와 현판 공개), ▷광화문 개문 의식, ▷‘새길맞이단’과 광화문 월대 행진 ▷참신한 연출기법으로 완성된 다양한 영상과 공연, 프로젝션 맵핑(미디어쇼)이 진행된다. 월대 좌우 130m의 담벽이 미디어아트로 수놓아진다.

경복궁 광화문 월대가 제 모습을 찾는다고 하니, 국민들은 기존에 직진하던 곳이 바뀌어, 높이 세워진 작업 막이 판넬 옆을 돌아가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제가 한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부수고 철길을 놓았으며, 친일부역자들은 해방후에도 나라의 주도권을 잡은채 우리의 정궁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의 행보를 막고 궁의 영역을 축소 은폐해 왔기에, 이제야 제모습을 찾은 것이다.

1923년 사진을 보면 초기 전동차(트램)가 운행모습이 보이고, 1917년 사진을 보면 월대의 계단이 일부 사라진 모습이 나타난다. 이번 복원은 월대자리에 기찻길이 놓인지 100년만이다.

1906~07년 무렵 헤르만산더가 찍은 사진. 월대가 본래 모습에 가깝다.
1920년대 사진. 전차가 보인다는 것은 월대가 완전히 파괴됐음을 말해준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신희권교수 월대 설명 유튜브 영상캡쳐

신희권 교수에 따르면, 경복궁은 1395년 건축되었고, 월대구역에선 임금과 백성이 함께하는 행사가 열렸으며, 임진왜란때 일본군이 방화, 파괴를 한 이후 1867년 고종이 조선전기의 모습으로 중건을 완료할 때까지 300년 가까이 폐허로 방치됐다.

▶일제의 파괴와 제한적 조사= 정치계, 문화유산계, 학계의 친일 잔존세력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남쪽 광화문에서 북쪽 침전지 까지 경복궁 복원계획은 1990년에대 수립됐다. 해방후 45년 동안이나 일제 모습 그대로였고,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야 근정전을 가리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폭파됐다. 경복궁 복원작업은 2045년까지 이어진다.

2007년 무렵 발굴조사에서 월대 구역에 조선 태조 때의 기초가 확인됐고, 차가 다니는 도로 구역을 조사할 수 없어 당시 월대의 남북 길이는 8.3m만 확인된다. 월대의 돌 울타리가 할수 있는 난간의 존재 정도를 확인하는데 그친다.

이후 국내외에 있는 고종시절 월대관련 사진들을 수집하고, 문헌을 고찰하며, 최근에야 칸막이를 치고 시작된 발굴조사를 통해 원래 월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2022~2023년 발굴조사 결과, 월대 구역은 남북길이 48.7m, 동서너비 29.7m였으며 인부들이 흙 4만짐을 이 곳에 쌓아 다진 것으로 확인됐다.

광화문 월대는 난간석(울타리 처럼 설치한 석물)을 두르고 기단을 쌓았다는데, 이런 형태의 월대는 광화문 것이 유일하다.

월대 하부 구조

▶뒤늦은 정밀 발굴조사= 광화문 중앙문과 이어지는 너비 약 7m의 어도지(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이 있던 자취) 기초시설, 월대의 서편과 달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동편의 모습 등도 확인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철된 이후 동구릉 등에 이전돼 있던 월대 부재(난간석, 하엽석 등)를 재사용하고, 문화유산 수리 장인 등 전문가와 함께 전통재료·기법을 적용해 월대를 진정성 있게 복원했다.

광화문 월대는 동·서 외곽에 잘 다듬어진 장대석(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을 이용하여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내부는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교차로 쌓아 주변보다 높게 대를 만들었다.

월대의 남쪽에는 장대석을 이용하여 계단을 조성하였는데, 그 중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계단의 좌·우측 양단을 장식하거나 마감하기 위해 놓이는 경사 부재)을 이용하여 동·서 계단과 분리했다. 어도의 계단은 남쪽으로 더 튀어나왔다.

▶일제의 파괴 전후= 어도지 부근에선 백성과 함께 행사를 하기 위해 궁을 나왔던 임금의 햇빛 가리개를 고정시키려는 차일 쇠고리를 박아둔 흔적도 발견됐다.

일제의 말살 기도로, 월대는 다음과 같이 훼손된다.

일제의 만행

원래는 남쪽 방향 3개의 계단(가운데는 어도 및 계단)이 존재했으며, 당시 월대의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요철:凹凸의 거꾸로 된 凸자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20세기 초부터 계단지가 경사로로 변화되었고, 이어 전체 월대 구역이 동일한 경사의 완만한 경사지로 훼손됐으며, 끝내 난간석도 모두 파괴돼 통의동방향, 안국동방향 두 개의 전차선로가 놓이고 말았다.

전차(트램)의 원할한 진행을 위해서라면 급회전을 막기 위해 오히려 월대를 그냥 두었어야 옳은데, 일제는 고의적으로 월대를 파괴하고 우리 문화유산 증거의 인멸을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것 지켜준 삼성과 동구릉= 월대 복원 작업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밀반출될 뻔한 월대 남쪽 양 끝을 장식하는 서수석을 기증한 것이다.

삼성가가 지켜낸 월대 서수상
어도지 계단

또 하나의 다행스런 일은 월대 파괴한 부재의 50% 가량이 동구릉에서 발견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는 장인들에게 힘을 실었다.

그래서, 2023년 10월15일 드디어 광화문 월대는 100년만에 제대로 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번 복원식은 ‘광화문 제 모습 찾기’를 시작으로 그간 추진된 월대와 현판의 복원이 마무리되었음을 국민들께 알리고, 명실상부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유산인 경복궁의 광화문이 완성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라는 슬로건으로 준비했다. 국민참여형 축제다.

이번 행사와 별도로, 다양한 연계행사도 준비되어 궁중문화축전(10월 13~18일, 4대궁), 제4회 문화재기능인 전통기법 진흥대회(10월 15일 9시~17시, 광화문 광장 놀이마당), 제18회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10월 13일~19일, 경복궁 흥례문 및 근정문 행각)도 진행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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