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본주의가 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2023. 10. 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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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난 사람]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기업에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묻고 기업의 이윤을 사회적 투자로 환원하는 일. 지금은 대세가 됐지만,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상임이사가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고민하며 사회에 공헌할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낯선 개념이었다. 양 상임이사는 당시 40여 명의 전문가와 2주에 한 번씩 만나 토론을 하면서 "돈 있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기업이 돈을 버는 행위는 경영자의 창의성도 있고 자본 투자도 있겠지만 여러 사람의 기여가 보태져 돈을 번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에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기업은 자신들의 이윤에 양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 활동의 철학을 바꾸자는 게 사회책임투자포럼의 시작이었다.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양춘승 상임이사와의 만남은 10월 어느 날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진행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했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프레시안(이명선)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목표로 2007년 설립된 비영리 기관이다. 지난 2008년 CDP(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한국위원회 조직을 주도해 매년 CDP 보고서를 내고 있으며, 국내외 투자자, 정부, 국회, 시민사회 등 여러 주체와 협력해 입법 지원, 정책 연구 개발, 캠페인 및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에 CSR을 묻는 것은 친기업적 행동"

양 상임이사의 말처럼 CSR은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삼성이나 현대처럼 거대 자본을 가진 경영진이 가족과 친인척을 주축으로 한 기업체, 즉 '재벌(財閥)'에 의해 한 나라의 GDP가 결정되는 한국의 특성상 기업에 CSR을 묻는 것은 '비난'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업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저도 기업인이었고 사업을 했던 입장에서 돈 버는 행위를 비난하거나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돈을 벌었다면, 그 이윤이 누구 덕분인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가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다 자기 주머니에 넣는 시스템은 자본주의밖에 없다."

양 상임이사는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라며 "기업들이 살려면 국제적인 추세를 앞서가지는 못해도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알아야 될 게 있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를 하고 있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데 대해서 둔감한 것 같다. 실제로 미국 같은 자본주의의 첨병을 걷고 있는 나라에서도 '신자본주의법'이 나왔다. 기업 이사회에 노동계 대표가 참가하는 등 노동자의 권한을 강조하자는 제안이다."

양 상임이사는 한발 더 나아가 CSR은 '우파 운동'이자 '친기업적'이라고 주장했다.

"단순히 세계적 흐름이 아니다. 기업에 CSR을 묻는 것은 친기업적인 행동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압박하려는 게 아니다. 기업이 살려면 이 길(CSR)로 갈 수밖에 없다."

▲ 글로벌 조사 네트워크 WIN이 2022년 10~12월 36개국 성인 2만9269명(전화/온라인/면접조사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lity, CSR)의 개념을 아는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51%가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39%는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한국조사는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2022년 11월 7~24일간 면접조사원 인터뷰(CAPI)방식으로 전국(제주 제외) 만 19세 이상 15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률 26.7%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포인트다.)

"'CF100'이라는 용어는 없다"

오늘날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자원봉사나 재난성금과 같은 일차원적인데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생산 활동으로 야기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공적기금과 투자를 통한 경영권 압박 등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다. 양 상임이사가 이끄는 사회책임투자포럼 역시 다양한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양 상임이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탄소중립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 'CF100(Carbon Free 100%)'에 대해 "CF100이라는 용어는 없다"며 "윤석열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만 쓰는 CF100의 정확한 용어는 '24/7 CFE, Carbon Free Energy'이다.

CF100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과 청정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CF100으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RE100은 철저히 민간인들의 거래로 이뤄진다. 바이어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CF100을 요구하는 바이어는 없다.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자기네 물건을 사주는 쪽의 의견을 선택하지 않을까? 윤석열 정부의 CF100은 접근은 잘못됐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세계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CF100은 국내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탄소중립을 위한 국제 이니셔티브 조사·분석).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무탄소 에너지 정책은 오히려 국내 기업에 재생에너지와 무탄소에너지 활용 사이에서 혼란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원전 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

국민연금 개혁도 CSR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즉 국민들의 돈을 잘 운영해 재정 고갈의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는 동시에 연금을 활용한 투자로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도입한 2018년 10월부터 1년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으로 활동한 양 상임이사는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을 뭐라고 생각할까.

"국민연금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금을 낸 사람들한테 연금을 제때 주는 것, 그리고 모아놓은 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것. 이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를 하나의 조직에서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젊은 40대 CEO를 앞세워 운용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투자자(국민)들의 돈을 운용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융의 논리를 따라야 된다. 어떻게 하면 투자의 성과를 더 좋게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그 투자가 공적으로 올바른 방향에 서게 할 것인가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치적 논리가 우선하는 분위기다. 구조적으로도 그렇다. 국민연금 이사회는 이사장 휘하에 있지만, 국민연금 운영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양 상임이사는 연금이 정치적 입김의 영향을 받는 한, 재정 고갈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노인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실제로 미래 세대는 지금 식으로 가서는 비전이 없다"며 "문제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의 경우, 연금의 핵심 기능인 노후 소득 강화안은 빠진 채 연금기금 재정 건전화 방안에만 초점이 맞춰져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노후 소득 강화 방안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넣기로 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대한 반발이 큰 상황이다. 국회 논의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시민 500명이 참여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특위)를 꾸리기로 했지만, 구성이나 운영 방식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6개 참가국이 2030년까지 지구 자연의 30%를 보전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새로운 생물다양성 협약에 합의했다.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생물다양성 분야, 투자의 중요 요소 될 것"

2000년대 초반 생소했던 CSR을 생각하면, 지난 16년간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활동은 한국 기업의 철학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 상임이사는 "사회책임투자포럼이 아닌 세계적 추세에 따른 선진적인 생각을 가진 바이어들 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와 기업들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마지못해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는 수준이라며 더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상임이사는 CSR에 있어서 앞으로 생물다양성 분야가 큰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리서치 회사 모닝스타가 지난해 12월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을 고려해 투자 전략을 짠 펀드는 14곳에 불과했다. 반면 기후변화을 고려해 투자 전략을 짠 펀드는 약 1100곳이나 됐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퍼리스 또한 지난 1월 투자자들에게 "투자할 때 생물다양성 보호 요소를 간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양 상임이사는 또 노동과 인권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기업 평가 요소인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ial Issue) 가운데 지금까지는 'E'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앞으로는 'S'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것. 한국도 금융위원회가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가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노동자에 대해서 우파적인 선전에 매몰된 바가 크다. 민주노총에 비판적 여론이 크고 어느정도 타당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노동자들이 처한 처지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들은 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기업가에 비해 돌려받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런 문제를 공론화 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 현장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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