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멘탈로는 거악을 못 이긴다 [노원명 에세이]
코로나시대 초기에 나는 ‘대구 사람들 참 점잖다’는 제목부터 도발적인 칼럼을 올렸다가 5000개가 넘는 악플 세례를 받았다. 화난 독자들은 댓글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지 개인 메일(공개돼 있다)로도 의견을 보내왔다. 주로 좌파쪽 정치성향을 지닌 독자들이었다.
지난 대선이 끝난직후 올린 ‘ “부정선거 얘기 이제는 못 하겠지?”란 허망한 기대’는 총선에 이어 대선때까지 극성을 부린 부정선거 음모론을 비판한 칼럼이었다. 댓글은 1000개에 못미쳤지만 욕설 메일은 ‘대구 사람들~’때보다 10배는 족히 들어왔다. 그때가 욕메일 개인 최고기록을 찍었을 때다. 보내온 사람들은 일반적인 우파는 아니지만 어쨌든 ‘강성 우파’로 분류될 독자들이었다.
2주전 이재명 구속영장 기각에 임하여 내보낸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은 검찰이 치를 대가’는 노출 시간이 짧았던 탓으로 댓글창이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꽤 많은 욕메일이 왔다. ‘좌파 기레기’ 비판이 많았다. ‘우파 기레기’란 욕을 꽤 오래, 꽤 많이 들어왔는데 신선한 비판이었다. ‘중도파로 신분세탁? ’ 야심도 들고, ‘철새 기레기인가’하는 자괴감도 들고.
나는 좌파들의 멘탈이 우파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험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지만 개인 메일은 보내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의 여론을 장악하는데는 관심이 있으나 기자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건 맞는 접근법이다. ‘기레기’들은 욕메일에 주눅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댓글은 읽어도 메일은 잘 읽지 않는다. 개인 메일은 많이 온들 공론장에 영향을 미칠수 없기 때문이다.
기사에 부들부들 떨며 욕메일을 보내는 우파 시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좀 심란해진다. ‘무엇이 바람직한 세상인가’ 하는 점에서 그들과 나의 세계관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같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 세상이 오나’라는 관점에선 좀 많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그렇게 성난 멘탈로는 그 세상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윤 정부와 극성 지지층은 지난 1년5개월을 ‘어떻게 이재명 따위가’ 하는 심리상태에서 보냈다. 그들은 이재명을 구속시켜 그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재명을 구속시키면 그 시대도 끝나는가. 설령 개인 이재명의 정치생명을 끝낸다치고 우파가 ‘이재명’이라는 정치 현상에서 느끼는 불온과 타락, 저질의 시대를 끝장낼수 있겠는가. 히틀러의 죽음은 나치즘의 종말과 일치했다. 우파는 개인 이재명이 ‘이재명 정치현상’의 끝장판이라고 확신하는가. 무슨 근거로.
윤 정부가 ‘이재명 현상’을 확실하게 끝낼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우리 세상이 이재명의 세상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면 이재명 현상은 봄햇살에 겨울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윤 정부 지지자들은 이재명의 세상이 얼마나 악몽일지 겪어보지 않고도 몸서리를 치지만 그들은 30% 안팎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재명 세상이 오면 망한다’고 해봐야 ‘지금은 괜찮고?’ 반문할 것이다.
이재명 극성 지지층이 아니라면 그의 세상이 위험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지한다. 사람은 언제 불안을 느끼는가. 가진게 있을때다. 이재명 시대가 오면 지금 가진 것을 잃게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 시대의 도래를 막는 방파제다. 그 불안을 각성시킬 정도의 매력을 여당과 윤 정부가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은 대안도, 매력도 없고 윤 정부는 외교에서 딴 점수를 인사에서 잃고 있다.
그들은 그저 이재명이라는 현상을 향해 성을 낼 뿐이다. 홍범도에도 성을 내고, 정율성에도 성을 낸다. 물론 홍범도의 흉상이 육사에, 정율성 기념사업이 광주에서 진행돼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정율성 따위는 ‘우리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하면 저절로 사라질 주제다. 성내면서 싸우고 힘빼지 않아도 된다.
거악을 향해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손쉬운 길이다. ‘우리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하는 길은 훨씬 어려운 길이다. 개혁의 칼을 대야 하고 기득권과 싸우고 기득권을 포기할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엘리트주의로만 가서도 안되고 ‘이 정부에서 장관되려면 신고재산이 50억은 되어야겠구나’ 하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곤란하다. 성난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지만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얘기다. 어려운 길을 가야 이길수 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500km ‘하마스 땅굴’, 속 모르니 걱정…이스라엘 인질도 이곳에? - 매일경제
- ‘정철원’ 울린 대만 롤러 선수, 똑같이 당했다…세리머니 하다 역전패 - 매일경제
- “공부가 힘들다”…서울대 도서관서 대학원생 숨진 채 발견 - 매일경제
- 드디어 나오나, 그돈이면 ‘혜자車’…‘스포티지값’ 3천만원대 기아EV [카슐랭] - 매일경제
- 이스라엘군이 죽인 ‘갓난아기’, 사진 자세히 보니 충격…하마스, 뭘 했길래 - 매일경제
- 이란, 이스라엘에 “당장 안멈추면 통제불능 닥칠 것” 경고 - 매일경제
- 신발 상자 크기인데···납골당 한 칸에 9억, 어디인가 봤더니 - 매일경제
- 올해 주가 65% 오른 하이닉스 특급 호재 떳다 - 매일경제
- 은행 예금이자 못지않네···1년새 9조 쓸어담은 이 계좌, 정체는? - 매일경제
- 이란에서 여성과 신체 접촉한 호날두, 태형 99대 위기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