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노릇’이라는 우울하고 험난한 모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생 국가다. 나라 장래가 걱정이라는 위기감이 높지만, 엄마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출생률만큼이나 낮다. 지역은 더 심각하다. 인구가 줄어들어 ‘지방 소멸’ 얘기가 나온 지 한참 됐는데 아이 낳는 엄마들의 사정에는 도통 무관심하다. 엄마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한국 사회는 이기적인 모성을 비난하거나 희생적인 모성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어떤책 펴냄)은 2021년 <애매한 재능>을 펴낸 수미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다. 경남 창원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함께 살면서 글쓰기를 이어가는 저자의 절절한 체험이 책 앞부분에 담겼고, 뒷부분엔 저자가 만난 우울한 엄마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기혼 유자녀 여성이 우울증에 취약한 건 개인 문제라기보다 사회문제라는 점을 책은 폭로한다. 엄마들의 우울증은 ‘사회적 질병’이다.
먼저 저자의 사례를 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건 좋은 일일 것 같았지만 결혼과 출산은 존중받지 못했고, 엄마 노릇은 험난한 모험이었다. 출산 직후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상처 난 젖꼭지를 아기에게 물릴 때마다 고문받는 듯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장기적인 ‘수면 부채’로 고통받고, 고립감 속에 몸부림쳤으며, 남편과 양육 갈등을 겪었다. 이웃의 층간·벽간 소음 항의에 노이로제 걸리다시피 두 번이나 이사해야 했으며, 동네에 출몰한 성폭력범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기저기서 끝도 없이 ‘엄마가 잘못했네’라는 지적질을 당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자신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돌봄과 가사로 번아웃이 된 5년 전 어느 날 ‘첫’ 자살 충동을 느꼈다. ‘내가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 지나도록 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아 정신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직설적으로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남편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들의 육아 우울로 인한 자살을 “비겁한 짓”이라고 했다. 나쁜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육아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진 일반 관념이었다.
저자는 극작과를 졸업한 방송작가였지만 결혼-출산-육아라는 사이클 속에서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반면 사회적 지위는 급격히 하락함을 느꼈다. 지역의 엄마들 다수는 더 열악한 환경, 질 낮은 일자리, 비정규직, 파트타임을 숙명처럼 여긴다. 창원과 울산 지역은 ‘부유한 노동자의 도시’라지만, 여성 연봉은 전국 평균 이하다. 독기를 품고 일하더라도 ‘엄마’는 언제든지 그만둘 것 같은 책임감 없는 노동자로 취급된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여전히 나쁜 거래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욱이 코로나19 때 엄마들은 숨 쉴 틈 없는 ‘독박육아’를 했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0~12살 아동 중 주간에 부모가 돌보는 비율은 60%를 넘었다. 15년 만의 최고 수준이었다. ‘케이(K)-방역’은 여성의 노동과 돌봄에 빚진 바 컸지만 정부는 이를 기억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줄 때 나온다는 옥시토신은 엄마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감정적 교류를 할 때도 분비된다. 저자는 2022년 12월부터 정기적으로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우살롱)을 진행하면서 무기력함을 털어놓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우울한 엄마들을 호명하고, 모으고,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환대와 연대를 경험했다. 깔끔한 회복은 아니더라도 상처를 끌어안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가족’은 끝없는 갈등과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관계이자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위태롭게 매일매일 집을 지키고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엄마들은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저자는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나는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
저자는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 도움말을 구하고, 우울한 엄마들을 인터뷰하고, 각종 자료를 연구하면서 책을 썼다. 평소엔 가정의 천사지만 위기 때는 전사가 되는 위대한 모성에 관한 고정관념이 허구임을 밝히고 엄마들의 우울이야말로 ‘정상’일 수 있음을 용기 내어 말했다. “우울한 엄마 책, 꼭 써주세요.” 눈물을 글썽이던 주변 엄마들의 응원 속에 발간된 책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썼다고 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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