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다리에 스멀스멀 벌레 느낌이…피부·혈관은 ‘멀쩡’
경민(가명)씨는 50살 여성으로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매장 운영이 예전만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자녀는 아들·딸 둘인데 아직 결혼을 안 하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퇴직하고 현재는 경민씨의 매장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활이 경민씨의 의류매장에 달려 있습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응대하기 위해서 온종일 서서 근무하게 됩니다.
경민씨는 한달 전부터 종아리에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불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때 이 증상이 생기면 움직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그 자리에서 구르거나 종아리를 주먹으로 때리면 조금 완화가 됩니다. 매장에서 근무할 때 증상이 나타나면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종아리에 통증이 발생합니다. 그대로 놔두면 다리에 쥐가 나는 것처럼 근육통이 오게 됩니다.
‘벌레 기어가는 느낌’이 자는 도중에도 일주일에 서너번은 생겼습니다. 수면 중 그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면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어나서 다리를 주무르면 느낌이 괜찮아집니다. 어떨 때는 다리가 타는 듯하기도 하고, 다리를 잡아당기거나, 전기가 흐르는 찌릿찌릿한 느낌이 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자주 깨다 보니 수면의 질이 나빠졌습니다. 낮에 매장에서도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종아리 통증과 함께 다리에 벌레 기어드는 느낌이 들면서 깨게 됩니다.
피부·혈관·척추에 이상 없어
경민씨는 ‘벌레 기어가는 느낌’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병원에 갔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민씨의 종아리에서 벌레가 발견된 적도 없고 피부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혹시 혈관 문제인가 해서 정맥류 검사 등을 해보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척추 디스크가 아닐까 생각해서 허리 주사도 맞아보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경민씨는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벌레 기어다니는 느낌이 심해져서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사가 귀찮고 의욕도 없어졌습니다. 자신이 매장 운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남편과 자식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경민씨는 혹시 정신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어 인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그에게 나타나는 ‘벌레 기어다니는 느낌’은 종아리에서 가장 심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날에는 다리 전체에 증상이 나타나고, 가만히 있거나 자려고 누우면 더 심해지고 다리를 움직이면 호전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지불안증후군이라는 병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중 5∼10%가 경험할 정도로 흔한 병입니다. 병원에서는 다음 다섯가지 증상을 모두 만족하면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진단합니다.
첫째,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듭니다. 이런 충동은 종종 다리의 불쾌한 느낌과 함께 찾아오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심할 경우에는 팔을 움직이고 싶은 충동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둘째, 움직이지 않을 때 증상이 더 심해집니다. 앉거나 누운 자세가 지속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증가합니다. 셋째, 다리를 움직이면 증상이 완화됩니다. 특히 걷기와 같은 움직임은 불쾌한 느낌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넷째, 증상은 저녁이나 밤에 시작되거나 더 나빠집니다. 다섯째, 이러한 증상이 다른 내과적, 행동 이상으로만 설명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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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휴식도 도움
경민씨는 혈액검사상 철 결핍성 빈혈이 나타났습니다.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8.0g/㎗로 정상치인 12.5~15.5g/㎗보다 부족한 빈혈 소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경민씨는 최근 체중 감량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면서 저녁을 먹지 않았고 채식 위주 식단을 유지했습니다. 철분은 우리 몸속에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활성화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도파민은 의욕과 기분에도 관여하지만 우리 몸의 근육 움직임에도 관여합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근육이 경직되고 굳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불안증후군도 도파민과 철분의 부족이 발병에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도파민의 부족은 우울증을 유발해서 매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게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불안증후군에 우울증이 더해지면서 잠을 못 자게 되고 의욕이 심각하게 저하됩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의 치료에는 경증의 경우 발·다리 마사지, 족욕, 반신욕, 가벼운 운동 등이 효과적입니다. 잠들기 전에 종아리를 본인이나 가족이 위아래로 힘을 줘 주무르면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철분 결핍이 있는 경우에는 전문 치료제로 철분 제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철분은 복용하면 속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정제가 불편한 분들은 물약의 형태로 나온 제형을 복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경민씨 정도의 중증은 도파민을 증가시키는 치료제를 전문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합니다. 물론 마사지, 철분약 복용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우울증에 대해서도 함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우울증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 결핍성 빈혈도 우울증의 원인이 됩니다. 가족들도 경민씨가 ‘종아리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을 받으며 힘들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실제 벌레가 있는 것은 아니고 도파민 부족에 의해서 근육 경직이 생겨서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동시에 우울한 기분과 의욕의 저하가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울증이 동반되면 일을 쉬면서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이 호전돼 잠을 잘 자게 되면 우울증 호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치료 뒤 경민씨는 하지불안증후군과 우울증이 모두 호전됐습니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해서 빈혈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자기 전에 종아리를 꼭 주무르고 자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의욕이 떨어지면 예민해지고 매사에 걱정이 많아지게 됩니다. 미리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제 매장에도 다시 손님이 많아지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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