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임윤찬과 한재민을 일찌감치 알아봤던 '마룻바닥 콘서트', 어느새 1천 회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2023. 10.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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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마룻바닥에 앉으면 특별한 공연이 펼쳐진다! 더하우스콘서트


지난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색다른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평소 관객들이 앉던 2,000여 석의 객석은 합창석 일부를 제외하면 텅 비었고, 이날 관객들은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가 마룻바닥에 앉았습니다. 연주자들이 객석을 등지고, 문자 그대로 '코앞'에 자리 잡은 관객들을 바라보며 연주했습니다. 바로 더하우스콘서트의 1000회 기념 공연이었습니다.

더하우스콘서트(이후 '하콘')는 박창수 대표가 200년 자신의 연희동 집을 개조해 작은 음악회를 열기 시작한 게 시초입니다. 작곡을 전공한 그가 예고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연습하던 경험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룻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음의 진동까지 느끼며 듣는 음악이,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보다 훨씬 좋았던 거죠.
 

연주자 코앞에서 보고, 와인파티도 즐기는데 3만 원

하콘은 200회를 연희동에서 진행하고 이후 몇몇 공간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정착해 매주 월요일 저녁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간이 바뀌었지만 하콘의 콘셉트는 그대로입니다. 연주자와 관객의 거리가 눈빛과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가깝고,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아 온몸으로 타고 오는 진동을 느끼며 음악을 감상합니다. 모든 공연은 녹음·녹화해 기록으로 남깁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는 유튜브 생중계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 하우스콘서트 공식 페이스북


하콘은 팬데믹으로 잠시 중단된 시기가 있었지만, 관객과 연주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조촐한 와인 파티를 공연 후에 엽니다. 연주자는 그날 들어온 티켓 수입의 절반을 개런티로 가져갑니다. 티켓은 특별 공연을 제외하면 3만 원입니다. (연주자 코앞에서 공연도 보고 와인 파티도 즐기는데 3만 원이면 정말 착한 가격 아닌가요?)

21년 이상 이어온 하콘의 출연자들은 모두 42개국 4,700명에 이릅니다. 클래식 음악이 주축이지만 가요와 국악, 영화음악과 재즈, 무용 등 다른 장르 예술가들도 함께 했습니다. 강산에, 크라잉넛, 10cm도 이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입니다. 하콘은 스타 연주자들을 일찌감치 발굴해 낸 '선구안'으로도 유명합니다. 김선욱, 조성진, 임윤찬, 한재민까지,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뜨기 전부터 이 무대를 거쳐갔습니다.

*하콘 유튜브에 올라있는, 하콘의 역사를 소개한 짤막한 영상(▶ 영상 보러 가기)입니다. 김선욱, 조성진, 임윤찬, 그리고 정경화 같은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하네요.
[ https://www.youtube.com/watch?v=ukVoFiVSWf8 ]

 

2,000석 객석 놔두고 관객도 무대에 올린 이유

하콘의 1000회 기념 콘서트는 처음으로 대학로를 벗어나 롯데콘서트홀이라는 대형 공연장으로 '진출'했지만, 관객도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오르게 하면서 티켓은 300장만 팔았습니다. 박창수 대표에게 굳이 그렇게 한 이유를 물으니 '남들 하는 대로 하기는 싫었다'고 하더군요. 관객과 연주자의 거리가 가까운 하콘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거죠.

박 대표는 피아노로 실험성 짙은 즉흥 연주, 프리 뮤직을 하는 작곡가이며 연주자이기도 한데요,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실험적 음악을 하는 것처럼, 하콘 역시 남들과 다른 실험을 해왔습니다. 집에서 공연하는 하우스 콘서트 형식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고, 한 달 동안 전국 공연장에서 동시다발로 공연을 여는 '원 먼스 페스티벌'을 열면서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을 수행했고, 국내외에서 하루 24시간 동안 공연을 이어가는 '원 데이 페스티벌', 한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집중 탐구하는 '줄라이 페스티벌'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이번 1,000회 공연은 8팀이 출연하는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열렸습니다. 모차르트가 8살 때 작곡했다는 교향곡 1번으로 시작해 현대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의 1979년작 'Eight Lines'로 끝났습니다. 챔버 오케스트라와 현악 4중주, 색소폰과 피아노, 생황과 하프 퍼커션 등등 다양한 편성의 곡들이 펼쳐졌는데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를 자주 듣기 어려운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들려준 것도 좋았지만, 특히 11살 소녀 첼리스트 김정아 양의 비범한 연주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정아 양은 권혁주 콩쿠르 대상 수상 당시의 연주 영상(▶ 영상 보러 가기)을 접하고 연락해 섭외했다고 합니다. 하콘은 갈라 콘서트에서 어린 유망주를 소개하는 전통이 있는데요, 노래도 하고, 리듬도 타야 하는 현대 작품(콩쿠르 당시 연주했던 곡입니다)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기막히게 소화했습니다. 권혁주 콩쿠르는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고 권혁주를 기려 지난해부터 열리는 콩쿠르인데, 권혁주 역시 하콘을 사랑하고 하콘이 사랑했던 연주자였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6QREXtpq2JI ]


박창수 대표는 8팀의 연주가 모두 끝난 후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긴 마라톤을 완주한 기분'이라며, 이제 하콘의 대표직을 다음 세대에 넘기고 예술감독으로 남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관객에 대한 감사 인사, 앞으로도 하콘을 지지해 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기립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는 박창수 대표를 보면서 저도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하콘 1,000회 공연 실황은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SBS 문화가중계에서 방영할 예정입니다.)

1,000회 공연 전에 박창수 대표, 강선애 수석매니저를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선애 수석 매니저는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로 하콘과 인연을 처음 맺었고,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가 '하콘 1호 직원'이 된 산 증인입니다. 긴 이야기 중 일부만 발췌해 소개합니다.
 

출연자 선정 원칙- 프로필 보지 않는다, 소리를 듣는다


김선욱이나 조성진, 임윤찬, 한재민 등 콩쿠르 우승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하콘 무대에 섰던 연주자들이 많습니다. 하콘이 신예 출연자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나 원칙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일단 연주자들의 프로필을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일단 연주자들의 프로필을' 다음에 나올 말이 '봅니다'일 거라고 무심히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프로필을 보는 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프로필을 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프로필을 안 본다는 의미는, 안 좋게 쓰이는 프로필은 거의 없거든요. 그러니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어느 학교 나왔다, 어느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것도 참고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 보고 믿을 수 있을 만큼은 안 된다는 거죠."

강선애 매니저가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하콘에 신예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고 싶어서 많이 연락해 오는데, 그러면 연주 영상이나 음원을 받아서 프로필은 빼고 박 대표에게 전달한다는 겁니다. 이 연주자가 몇 살이냐, 이런 정도만 체크한다고 했습니다.

"프로필을 보는 건 먼저 그 연주자의 소리를 들어보고 확인을 하는 경우여야 합니다. 그리고 잘한다고 해서 무대에 서는 건 아니에요. 제 나름의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연주가 가지는 호흡을 주로 봅니다. 얼마나 긴 호흡을 가지는 연주자인지, 이 친구가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지를 봅니다."

- "긴 호흡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뜻하는 건가요? 직관적으로 느껴지시는 건가요?"

"직관적인 것도 있고요, 논리적으로 전체 음악적인 *프레이징(phrasing)을 어떻게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이 사람이 얼마만큼 성장할지가 달라진다는 걸 제가 여러 번 확인했어요. 그게 척도가 되죠. 지금은 좀 부족해 보이더라도 긴 호흡을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은 언젠가는 꼭 빛을 내죠."

*선율을 프레이즈(phrase)로 나누는 것, 즉 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서 정리해 연주하는 것을 프레이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노래의 한 단락이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단락이 시작되고, 이런 걸 파악해서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연주하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프레이징도 다 배우지 않나요?"

"배워서 되는 게 있고요, 본인이 타고나는 것도 있죠. 노력으로만 되지는 않아요. 긴 프레이징을 할 경우는 실제로 연기자가 호흡이 가빠지기도 하거든요. 보충을 한다면 프로그램에 어떤 곡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구성할 것인가, 이것도 호흡하고 관계가 있죠. 또 지난해 이런 프로그램을 했으면 올해는 어떤 식으로 할 예정인가, 이런 얘기도 나누다 보면 이 연주자가 긴 호흡을 갖고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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