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상처 받았을 때, 진통제 ‘한 알’이 효과 있다?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
은유적 표현 같아 보이지만, 이는 근거 없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뇌에서는 몸의 통증과 마음의 통증을 같은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그렇다. 거절이나 따돌림, 실연, 사별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뇌에서는 마음이 붓고, 피 나고, 멍든 것으로 여긴다. 기묘하게 연결된 몸과 마음의 세계를 살펴보자.
몸이건 마음이건 아프면 반응하는 뇌 영역은 똑같다
몸이 아프면 뇌에 비상경보등이 켜진다. 신체에 고통이 느껴지면, 외부에서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때 관여하는 뇌 영역은 배전측 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dACC)과 전측 섬엽(anterior insula· AI)이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아플 때도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 특히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거절당하거나, 따돌림당할 때 그렇다. 실연이나 사별로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신체적 생존만큼 중요한 ‘사회적 생존’
뇌는 왜 마음이 다쳤을 때, 몸이 아플 때와 같은 반응을 보일까? 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사회적 생존’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원시 사회에서는 만약 인간이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망쳐 무리 밖으로 쫓겨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무리에서 더 이상 보호 받지 못하게 돼 외부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뇌에 작용하는 진통제, 마음의 고통에도 효과
네이선 드월 미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예: ‘타이레놀’)로 실험했다. 여러 진통제 중에서도 아세트아미노펜은 뇌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원리의 진통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건 모든 진통제가 다 마음의 고통에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말초신경에 주로 작용해 진통 소염 작용을 하는 이부프로펜 계열 진통제(예: ‘애드빌’ 등)는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아래 그래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그래프가 진통제를 복용한 그룹에서 기록한 마음의 고통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 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점선 그래프는 가짜 약을 먹은 그룹이다. 기울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고통이 약간 증가했다.
마음 아플 때도, 몸 아플 때만큼 보살펴야
이러한 결과는 추후 진행한 또 다른 fMRI 검사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앞에서 소개한 컴퓨터 공놀이 게임에서 따돌림당하는 상황을 똑같이 연출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사전에 진통제를 먹었다는 점만 달랐다. 그 결과 진통제를 먹은 사람들은 따돌림당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뇌 영역이 덜 활성화됐다. 즉, 따돌림을 당해도 심리적 타격감이 별로 없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진통제가 적어도 일시적으로 심리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심리적 고통을 줄이는데 진통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는 점도 분명하게 경고했다. 잠깐 고통을 못 느끼게 해줄 뿐,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상황에 따라 복용 기준도 잘 지켜야 한다. 실험에서는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아세트아미노펜 하루 최대 복용량 기준(4000㎎) 이하를 준수했다. 음주가 잦거나, 간이 안 좋거나, 이미 다른 약을 복용 중인 경우에는 의료인과 상의해야 한다.
다음 주 기사에서는 △헤어진 전 애인 사진 볼 때 뇌에선 무슨 일이? △몸이 자주 아프면, 마음도 자주 아프다 △대인관계 나아지면 아픈 몸도 낫는다 등의 내용을 다룰 예정입니다. |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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