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D.P.' 연기 神+핫한 신인감독의 엉뚱한 장래희망은?"[인터뷰]
아이즈 ize 김나라 기자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연기 천재' 박정민이 인정한 '천재 배우' 조현철이 감독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로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시즌1'의 조석봉 일병 역으로 독보적인 열연을 펼쳤던 그답게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뽐내며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너와 나'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세미와 하은의 미묘한 우정을 중심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평범한 일상을 덤덤하게 비추며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6일 잊혀진 그날을 상기시키고 가슴 먹먹한 위로를 건넨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0회 마리끌레르영화제,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3회 가오슝영화제, 제18회 파리한국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를 통해 평단의 극찬을 이끈 바. 조현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으며, 7년여간 공들인 끝에 오는 25일 드디어 관객들을 찾아간다.
조현철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재조명한 이유에 대해 "왜 굳이 세월호를 끄집어내서 기억하려 하냐는 반응이 있는데,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제가 찾아 나섰다기보다는 타이밍적으로 이 이야기가 저를 잡아끌었던 거 같다. 영화를 작업할 때도 부름을 받고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힘든 시간이 있었고 지체가 되기도 했지만 완성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이 저도 개인적인 사건을 계기로 (세월호 참사) 이야기에 끌리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새 관점을 얻어 달라진 거다. 기존에 저도 사회적 죽음을 제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았다. 근데 개인적 사건으로 허무한 상실감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털어놨다.
조현철 감독은 "2016년 '너와 나'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수학여행 전날 고등학생 얘기'라고 하면 다들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렸다. 많은 걸 숨기더라도 다 알아들었는데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지체될수록 사람들이 모르더라. 잊혀가는 게 체감이 되었다. 그래서 '너와 나'로 시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영화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인 비주얼이 돋보이며, 이 안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강조한 조현철 감독. 그는 "'너와 나'를 작업 중이던 2017년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유가족 집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한 생존자 학생이 '친구가 꿈에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 인상이 제 머릿속에 깊게 박혀서 우리 영화가 정말 꿈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세미가 찾아온 것처럼, 극장에서 꿈을 꾼 거 같은 느낌,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온 거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거대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되게 비현실적이지 않나.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이 살아돌아 오는 듯한 느낌이 들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또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때 끄집어낸 사소한 감정들이 다 사랑이라고 느껴 연결 지어 표현했다. 어떤 면에선 사랑이 크면 미련도 크게 남게 되지 않나. 그런 감정을 다 포함해서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조현철 감독의 진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며 웰메이드 만듦새를 자랑하는 '너와 나'다. 조현철 감독은 "저는 작품을 만들면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죽었는데,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죽음을 겪고 상실을 겪을 테고 일어날 일이고 일어났을 일인데, 거짓말하기보다 아픈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다 괜찮다' 하고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만들었지만 저 역시도 위로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소재에 퀴어 코드를 버무린 것에 대해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조현철 감독은 "여고생들의 사랑은 자연스러웠다. 보통 멜로 영화를 볼 때 '왜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하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처럼, 세미와 하은의 사랑도 자연스러운 거였다"라고 답했다.
세월호 피해자 정예진 학생의 18번 빅마마 '체념'을 삽입하고 직접 입시학원 취재까지 다니며 디테일한 연출로 설득력을 높인 조현철 감독. 그는 "실제 피해자들의 에피소드를 담는 건 아예 지양하려 했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세월호 약전을 쓴 친구가 '체념'의 사전적 의미 '도리를 깨닫는 마음'을 알려줬다. 그러면서 '체념'이 정예진 학생의 18번이라는 것도 말해 줬는데 그게 제 안에 들어왔던 거 같다"라고 얘기했다.
조현철 감독은 "저도 여고생들의 우정과 사랑, 이 발상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있었다. 이들의 세계를 감히 내가 표현해도 될까 싶었는데 그 두려움이 더 취재하게끔 만들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너와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또 제가 자라온 환경이 이모 등 여성 옆에서 자라기도 했고 제 성향상 잘 맞기도 했다. 저는 인간은 얼마든지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제가 예전엔 이것도 저것도 좋아하고 쉽게 흥분하고 경도하는 경향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지워가며 결국 남은 게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거다. 이게 인간 조현철의 꿈이다"라며 열린 사고방식을 엿보게 했다.
주연 박혜수와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이를 눈여겨본 제작사 필름영 측의 추천으로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듬해인 2021년 2월 박혜수의 '학폭'(학교 폭력) 가해 의혹이 터지며 '너와 나'도 덩달아 이슈의 중심에 섰다. 박혜수는 당시 출연 예정이던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활동을 중단했지만, 조현철 감독이 끝까지 그를 품으며 빠른 복귀가 가능해졌다. 박혜수는 최근 열린 '너와 나' 언론시사회에서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긴 하지만 (사실무근)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직접 부인하기도 했다.
조현철 감독은 "진짜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저, 박혜수, PD님과 셋이 의기투합해서 '너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 와중에 이런 일이 터졌는데 그동안 제가 곁에서 봐온 (박)혜수는 그런 (논란의) 사람이 아니었다. 루머나 인터넷상 소문들은 얼마든지 과장, 왜곡될 수 있다고 본다. 저 역시도 박혜수 본인과 얘기하기 전엔 많이 흔들렸는데 막상 논의해 보니 진정성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제가 그간 봐온 박혜수는 사람은 단순히 매체에서 보여진 청순하고 귀여운 배우가 아닌 정말로 용기 있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많고 후배들을 잘 챙기고, 그의 연기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라고 깊은 신뢰를 보였다.
그는 "사실 박혜수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함께 출연하긴 했지만 그때는 서로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다. 제작사의 제안으로 시나리오를 드린 거였는데, 당시엔 박혜수가 핫하게 떠오를 때라 안 할 줄 알았다. 근데 박혜수가 덥석 하겠다고 하더라. 속으로 '이 사람은 좋은 얘기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서 김시은과 같이 한치의 걱정할 필요 없이 잘 해냈다. 물론 박혜수야 부담이 됐겠지만 유쾌한 사람이라 힘든 일에도 웃고 그런 면이 있어서 걱정이 없었다. 어떤 사랑을 표현해야 했는지 집중하며 연기하더라. 정말 다 알아서 잘 해내서, 좋은 배우들을 만났다는 생각이다. 함께한 거의 모든 순간이 놀라웠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전히 캐스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조현철 감독은 "후회는 전혀 없다"라고 거듭 단호히 얘기했다. 그는 "대게 상업적인 논리들 속에서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데 '너와 나'는 처음 이 얘기를 만났을 때부터 '사랑의 논리'로 만들고 싶었다. 사랑에 반하고 세상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믿음 때문에 힘든 과정이 많았지만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기도 했고. '너와 나' 자체를 애정 하는 배우들, 스태프들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며 만들었다. 현장에서 정말 눈에 보일 정도로 사랑했고, 그 증거가 '너와 나'로 남아있지 않나 싶다"라고 남다른 마음을 표했다.
조현철 감독은 "생생하게 세세하게 있던 인물, 이야기가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점점 납작해져 가고 있지 않나. 내가 이걸 너무 지체했나 싶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 같아서 꼭 얘기해야겠다 싶었다"라면서 "최근 몇 년 간 산업적으로 큰 부흥이 된 것처럼 보이며 한류 콘텐츠가 주목을 받았고, 한편으론 자극적인 이야기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싸우고 있고 뭐만 하면 사과문을 발표하고, 서로 고소를 하고 있고. 우리가 정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했던 소중한 가치, 상업적·정치적 논리를 떠나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너와 나'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너와 나'를 보시고 그냥 사랑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다. 회사일이든 자영업이든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 피곤하고 그만하고 싶고 쉬고 싶고. 우리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그랬을 텐데 '너와 나'를 하면서 '살맛 난다' 그런 감정을 공유했다. 이 마음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을 정말 애정하고 사랑으로 찍었으니까. 그런 온기가 '너와 나'에도 담겼다고 생각하고, 이 따뜻한 온기를 조금이라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배우, 감독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기도. 조현철 감독은 "단편을 만들 때는 체감 못했는데 장편을 만들며 사소한 일로도 영화가 엎어질 수 있고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웃음). 연기가 나름 재미가 있고 찾을 수 있는 게 있는데 연출을 하면서는 좀 더 과학자의 태도를 갖고 냉철하게 이 세계를 넓은 관점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각각 매력이 다른 것 같다. 두 분야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도전해 보고 싶다"라고 열의를 불태웠다.
다만 조현철 감독은 '천재 배우'로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전하기도. 그는 "저는 항상 그런 것들을 경계하는 거 같다. 제가 한 것보다 상업적으로 잘 풀릴 때, 불안하게 느껴졌다. 제가 한 일의 가치보다 제 이름이 커지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최대한 차분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저런 평가나 칭찬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려움이 적지 않나 싶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선 "제가 시골에 살아서 근사한 나무들이 많은데 걔들을 볼 때면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게 다 지나갈 것이고 이는 정말 순간인 것이란 걸. 그리고 반려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더라. 잠자고 있는 것만 봐도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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