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하면 실명, 신생아처럼 힘빠지는 '이 병'…약있어도 못쓴다?

이창섭 기자 2023. 10.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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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 척수염 환자 보호자와 민주홍 신경과 교수 인터뷰
잦은 재발 유발하는 시신경 척수염, 시력 빼앗고 걷지도 못하게 해
재발막는 효과적 치료제 '솔리리스' 있지만 급여 안 돼
"쓸 약 있어도 못 쓰는 상황… 환자는 재발 견디며 고통"
시신경 척수염 환자 A씨의 며느리이자 보호자인 B씨가 머니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A씨(82·여)는 2014년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 밑에서 가슴까지 저리는 증상도 시작됐다. MRI 등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진단까지 무려 1년이 걸린 이 병은 '시신경 척수염'. 증상이 재발할 때마다 A씨는 마치 신생아처럼 제대로 걷지 못했다.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런 재발을 무려 5번이나 겪었다.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민주홍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신경면역학회 학술이사)는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한 번의 재발로 환자가 실명하거나 보행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발을 잘 막는 게 치료의 핵심 목표이다"고 강조했다.

재발은 시신경 척수염 환자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이다. 민 교수는 "1년에 0.8회 정도의 재발률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로 1년에 4~5회의 재발을 겪는 환자도 있다.

A씨도 잦은 재발을 겪었다. 반복적인 재발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일상의 균형이 무너졌다.

A씨의 며느리이자 보호자인 B씨는 "한 번은 친정에 다 같이 김장하러 갔어야 했는데, 갑자기 어머니(A씨)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신 적이 있다"며 "김장을 취소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급하게 간병인을 찾아봤지만 끝까지 구해지지 않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대신 간병했다"고 말했다.

2015년 겨울에는 A씨가 욕실에서 쓰러져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재발하면 걸음마를 못 하는 신생아처럼 다리에 힘이 없어 걷지도 못하고, 휠체어나 차에 앉힐 수도 없었다"고 B씨는 회고했다.

시신경 척수염 치료에는 스테로이드 투약과 혈장교환술 등이 시행된다. 이후에는 유지요법으로 아자티오프린, 미코페놀레이트 모페틸, 리툭시맙과 같은 약들을 사용하는데 재발 방지에는 한계가 있다.

민 교수는 "보통 아자티오프린은 50%, 미코페놀레이트 모페틸은 60%, 리툭시맙은 60~70% 정도의 재발 예방률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된다"며 "간단하게 보면 아자티오프린과 미코페놀레이트 모페틸은 환자 절반 정도에서 재발하고, 리툭시맙은 10명 중 3~4명이 재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홍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신경면역학회 학술이사)가 머니투데이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약제는 간에 무리를 주거나 백혈구 수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특히 리툭시맙은 간혹 대상포진 감염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2021년 '솔리리스'(에쿨리주맙)라는 약제가 국내에서 허가받았다. 민 교수는 "FDA(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은 시신경 척수염 신약 중에서도 대규모 3상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된 약이다"고 설명했다.

민 교수는 "2년 재발 예방률을 봤을 때 솔리리스는 약 96% 예방률을 보여 다른 신약 대비 효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솔리리스를 투여한 시신경 척수염 환자를 최대 5.2년간 추적해 분석한 결과, 치료 192주 차에 재발 방지율이 96.2%다.

A씨는 2017년 솔리리스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그 이후로는 재발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B씨는 "어머니가 신약(솔리리스) 치료 이후 거뜬하게 일어나시지는 못하지만, 어렵게라도 스스로 화장실을 가신다"며 "시력도 이전에는 거의 안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임상시험 참여 후에는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재발하면 무릎에 힘이 빠져서 '모래 무너지듯' 갑자기 주저앉는 경우가 있었다"며 "지금은 이렇게 힘이 빠지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크게 좋아진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신경 척수염 환자 치료에서 솔리리스는 현재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솔리리스의 1병 가격은 약 500만원, 연간 투약 비용이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처럼 임상시험에 참여해야만 겨우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 환자에겐 솔리리스는 '그림의 떡'이다. 제한된 치료제로 버티면서 잦은 재발을 감내해야 한다.

민 교수는 "현재 치료에서 실패했을 때 다음 약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 쓰지 못하고, 환자는 재발을 반복하면서 장애를 겪는 상황이다"며 "이와 같은 환자에게는 치료 옵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리리스는 현재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해외에서 시신경 척수염 환자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선 좀처럼 급여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정부는 시신경 척수염 치료에서 솔리리스의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최후순위(5차 치료)로 설정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이에 민 교수는 "효과와 부작용 측면에서 솔리리스가 5차로 분류되는 뚜렷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B씨는 "솔리리스와 같은 선택지가 있어도 다른 환자들은 이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다"며 "시신경 척수염이 젊은 사람에서 발병이 많은데, 이들이 일상을 잃지 않도록 신약을 처방받을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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