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부재 찾고, 제보까지…월대 복원에 힘 보탠 '매의 눈'

김예나 2023. 10.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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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지키던 난간석·상서로운 동물·현판 3종 완성하기까지
"새로운 경복궁의 얼굴 기대…달라진 광화문, 지금부터가 시작"
광화문, 새로운 모습으로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5일 복원 기념 행사를 앞둔 서울 광화문 월대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10.15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구한말에서 1920년대 초 사이 서울 광화문 앞을 찍은 사진을 보면 넓은 공간이 눈에 띈다.

궁궐을 벗어난 임금이 백성과 가장 먼저 만나던 장소, 월대(越臺, 月臺)다.

그러나 광화문 앞 월대와 관련한 직접적인 기록은 많지 않다.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 '영건일기'(營建日記)에도 1866년 3월 광화문 앞에 넓은 대(臺)를 만들었다고 짤막하게 전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거친 광화문의 본모습을 찾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광화문 월대 옛 모습 1923년경 광화문 모습. 2023.4.25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나나 학예연구사는 월대 좌우에 있었던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조물을 뜻함)에서 힌트를 얻었다.

조선왕릉의 난간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 연구사는 1920년대 광화문 사진을 분석한 결과, 월대의 난간석 일부로 추정되는 석재가 경기 구리 동구릉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수십 차례 동구릉을 오가며 석조물 하나하나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었다.

전 연구사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을 실마리로 문화재청이 조사한 결과, 동구릉에 모여 있던 난간석과 용두석(龍頭石·용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석조물) 등 40여 점이 원래 광화문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공개되는 광화문 앞 월대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오는 15일 복원공사를 마치고 공개되는 서울 광화문 앞 월대에서 11일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월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로 추정되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문화재청은 지난달부터 광화문 출입을 전면 폐쇄하고 복원 마무리 공사 중이다. 2023.10.11 jjaeck9@yna.co.kr

1920년대 일제에 의해 사라지기 전 모습을 간직한 이른바 '원형 부재'였다.

전 연구사는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왕릉과 궁궐은 큰 차이가 있다 보니 연구하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월대 복원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 연구사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의 전신인 궁능문화재과에서 수년 간 일했다. 2014년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이 개관했을 때도 함께한 그에게 궁을 복원한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

전 연구사는 "현재 경복궁 복원은 고종 연간(1863∼1907)을 기준으로 진행 중인데 당시 힘들게 중건했던 광화문의 옛 모습을 찾는 데 일조할 수 있어 연구자로서 뿌듯하다"고 전했다.

전나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 [전나나 씨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광화문을 '경복궁의 얼굴'이라고 지칭하며 더 많은 연구가 이어지길 바랐다.

월대 복원과 함께 이뤄진 현판 제작에도 젊은 연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광화문 현판 제작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 '영건일기'를 분석한 내용을 학술지에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김 연구원은 광화문, 근정전, 경회루 등 경복궁의 주요 전각의 현판 바탕이 검은색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짚으며 "화재에서 무사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글자와 같은 형태의 동판을 덧댄 것으로 보이는데, 광화문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광화문 앞 월대의 난간석 배열 설계 변경 전(왼쪽)과 후(오른쪽)를 비교한 것. 기존에는 구리 동구릉에서 나온 석재들이 앞쪽에 배치돼 있으나 이후 각자 자리를 찾은 점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의 '광화문 월대 복원, 시작과 끝' 복원 자료집 일부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여러 차례 실험과 논의 끝에 광화문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빛 글자로 결정됐다.

김 연구원은 "'영건일기'는 총 9책으로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는데 자료를 접한 뒤 이틀간 4번 읽었었다"며 "다른 기록이 많지 않아 검증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월대가 복원되고 새로운 현판이 걸리는 광화문은 웅장한 모습일 것"이라며 "앞으로 경복궁 복원 사업을 20∼25년 더 할 텐데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광화문 월대 복원의 '마지막 퍼즐'로 여겨진 동물 조각상은 시민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건희 회장 유족이 기증한 광화문 서수상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29일 오후 서울 경복궁에서 김민규 문화재청 전문위원(조선시대 석조 미술사 전공)이 광화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서수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문화재청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으로부터 이 석조각 2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2023.8.29 ondol@yna.co.kr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소장했던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1쌍은 오랜 기간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 전시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관람객이 봤을 법한 이 석상에 주목한 건 한 유튜버였다.

문화유산 관련 이야기를 다루는 그는 2021년 9월 광화문 월대와 해태상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올렸고, 이를 본 시민이 문화재청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큰 코와 눈이 돋보이는 서수상은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 월대의 가장 앞부분을 장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수상이 놓여 있던 위치도 그렇지만, 월대 복원이 마무리되는 절묘한 시점에 찾게 된 것은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퍼즐'의 완성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임금의 길' 광화문 월대·현판 복원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과거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백성과 만나던 '역사의 길'이 열리고, 광화문을 나타내는 현판도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다시 태어난다. 문화재청은 오는 15일 오후 5시부터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서 월대(越臺, 月臺·건물 앞에 넓게 설치한 대)와 현판 복원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연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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