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바탕에 금빛 '광화문'…현판 둘러싼 논란 마침표 찍을까
대표 명소 고려한 한글 현판 주장도…"'광화' 의미 함께 떠올렸으면"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니 근정전 앞 세 번째 문을 광화(光化)라 하고….' (세종실록 1426년 10월 26일 기사)
경복궁 남쪽에 있는 광화문은 오래전부터 궁궐의 정문 역할을 했다.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 구조의 누각을 세워 마치 성곽의 성문처럼 지었고, 그 아래에는 왕과 왕세자, 신하가 드나드는 문을 뒀다.
조선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광화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담은 현판은 오랜 기간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뒤 1968년 복원한 광화문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친필로 쓴 '광화문' 한글 현판이 걸렸다.
그러나 당시 광화문은 목재가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데다 원래 위치를 벗어나 있었고, 경복궁 중심축에서 틀어져 있어 '반쪽' 짜리 복원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후 광화문 복원 사업이 추진되면서 현판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졌다.
문화재청은 2005년 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한글 현판을 한자 현판으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정치권과 한글 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잇단 논란 끝에 2006년부터 광화문의 '제 모습 찾기' 사업이 시작됐고, 이로부터 4년 뒤인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한자로 된 현판이 광화문에 새로 걸렸다.
새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자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조선시대 궁 등의 건축 공사를 관장하던 임시 관서의 직책)를 겸한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것이다.
당시 현판 제막 행사는 전·현직 대통령이 참석하며 성대하게 열렸으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현판을 공개한 지 약 3개월 만에 `광(光)' 자 앞쪽에 위아래로 길게 균열이 생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부실 복원 논란이 일었고, 문화재청은 그해 연말 현판 교체를 결정했다.
새로 현판을 만들기로 한 뒤에는 제작 방식이 문제였다.
현판의 바탕과 글자 색을 어떻게 할지, 누구의 글씨를 쓰는 게 적합할지, 한글과 한자 중 무엇이 더 좋을지 등 온갖 의견이 쏟아졌고 관심이 쏠렸다.
문화재청은 2012년 12월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한글 단체의 주장을 물리치고 '복원'이라는 단어 의미에 맞게 기존대로 임태영이 한자로 쓴 글씨를 새기기로 했다.
현판 크기는 가로 390.5㎝, 세로 135㎝에서 가로 427.6㎝, 세로 113.8㎝로 일부 조정했다.
여러 차례 연구 용역을 진행했지만, 현판 바탕과 글자 색을 정하는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당초 문화재청은 기존처럼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1893년 무렵 사진 등 새로운 자료가 하나둘 나오면서 고민에 빠졌다.
2018년 말에는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에서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를 뜻하는 '묵질금자'(墨質金字), '흑질금자'(黑質金字) 등의 문구가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가 또 다른 변수가 됐다.
전문가 회의와 고증 실험을 반복한 끝에 새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글자로 결정됐다. 전통 방식으로 단청을 한 뒤, 글자에 금박을 씌운 동판을 덧대는 방식이다.
약 13년 만에 바뀌는 현판은 15일 오후 광화문 앞 광장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서 공개된다.
일각에서는 서울의 대표 명소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열린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광화문은 해외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라며 한글 현판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영건일기' 내용을 분석해 학계에 소개했던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문화재청 전문위원은 "이제는 (현판에 대한) 오랜 논쟁을 끝내고 광화문의 의미에 주목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과거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었지만, 지금은 광장의 중심"이라며 "빛처럼 퍼지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긴 이름과 궁궐 건축에 담긴 의미를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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