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마다 반복되는 ‘다음’ 수난사(史)
업계 “단순 매크로 조작, 여론조작 아냐”
[주간경향] 정말로 “반국가세력(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포털 여론을 조작하려고 획책한 것일까. 시스템의 맹점을 악용한 일부 사용자들의 ‘장난’에 여당과 정부가 낚인 것일까. 10월 1일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8강전에서 발생한 포털사이트 ‘다음’ 내 과다 ‘클릭 응원’ 현상의 여파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다음의 집계를 보면 당시 약 3130만 건의 클릭 응원 중 중국을 응원한 클릭이 93.2%(2919만 건)로 한국 응원 클릭(6.8%·211만 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이 결과에 화들짝 놀란 다음은 8년 넘게 운영해온 클릭 응원 사이트를 닫았다. 여당과 정부는 “제2의 드루킹 사태”, “반국가세력의 개입” 등을 운운하더니 지난 10월 4일 ‘여론 왜곡·조작 방지 대책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TF가 출범한 날 다음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주가는 52주 신저가(4만1600원)로 추락했고, 수많은 주주가 손해를 봤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이 같은 ‘이상 클릭’ 응원을 실행한 측과 뚜렷한 물증 없이 TF를 띄운 당정 모두 책임이 가볍지 않다.
다음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줄곧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시달렸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아고라’를 닫았고, 댓글창도 사실상 닫았지만 ‘색안경’을 끼고 다음을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은 여전하다. 클릭 응원 현상을 놓고 “다음은 상대적으로 이용자가 적어 여론조작이 용이하니 중국인 이용자나 친중국 한국인 이용자의 여론조작 놀이터가 되고 있단 말인가”라고 의혹을 제기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말은 현 정권이 다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늠케 한다.
경기 끝난 뒤 2개 IP에서 약 2000만건 클릭
판단을 위해선 우선 집계된 ‘수치’를 정확히 봐야 한다. 당시 클릭 응원이 끝났을 때 화면에 표시된 최종 응원 수는 약 3130만 건이었다. 이중 접속지역이 확인된 인터넷주소(IP)로 클릭된 응원 수는 2294만 건이었다. 두 수치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클릭 응원’ 시스템이 특정 IP에서 과도한 중복 클릭이 발생할 경우 이를 응원 수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단순 최종 응원 수만 따지자면 실제로는 3130만 건보다 더 많았을 것이란 게 다음 측의 추정이다.
중요한 건 확인된 IP에서 나온 2294만 건의 클릭 응원이다. 여기에는 모두 5591개의 IP가 관여했다. 다음의 ‘클릭 응원’의 경우 별도의 로그인 없이 계속 응원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구조다. IP 지역을 보면 국내 IP가 95%(5318개)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정말 ‘친중국’ 국내 사용자들이 대거 중국 응원에 나섰을까? 아니다. 이들 95%에 해당하는 국내 IP가 생성한 클릭 응원 수는 고작 301만 건(13.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86.9%에 해당하는 1993만 건의 응원은 어디서 나왔을까. IP 비중에서는 전체의 5%에 불과한 해외 IP에서 나왔다. 더 놀라운 건 이 1993만 건 중 99.8%에 해당하는 1989만 건이 단 2개의 IP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하나의 IP를 1명의 사용자로 간주한다면 단 2명이 중국을 응원하는 클릭을 1989만 번이나 누른 셈이 된다.
2개의 해외 IP 중 네덜란드 IP에서 79.4%에 해당하는 1539만 건이, 일본 IP에서 20.6%에 해당하는 449만 건이 각각 클릭됐다. 2개의 IP에서, 사람의 힘으로 단시간 내 1989만 번을 클릭하기란 불가능하다. 다음은 해당 사용자가 ‘매크로(자동완성프로그램)’를 사용해 고의적으로 중국 응원 클릭을 높였다고 보고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중국 응원을 주도한 2개의 IP 주인은 몇명일까. 이들의 국적은 중국인일까, ‘친중국’ 한국인일까, 아니면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한 세력’일까.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해당 클릭 응원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들어왔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가상사설망을 통하면 실제 접속지역을 속일 수 있다. ‘생뚱맞게’ 네덜란드 IP가 나온 이유다. “반국가세력” 운운한 당정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부분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매크로와 VPN을 이용하면 한 사람이 해외 IP로 수천만 번 클릭을 올릴 수 있고,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다음의 한·중전 클릭 응원에 참여한 IP가 겨우 5500여개로 너무 적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말했다.
다음에 새겨진 “좌빨” 이란 주홍글씨
IT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단순한 ‘매크로 놀이’로 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실행자 측에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에 대한 응원이 시작된 시각부터 이상하다. 한·중전은 국내 시각으로 10월 1일 오후 9~11시에 치러졌다. 2개의 해외 IP에서 집중 클릭이 시작된 건 경기가 끝난 뒤인 10월 2일 0시 30분 이후부터였다. 이미 한국의 승리로 끝난 경기에 뒤늦게 들어가 중국 응원을 잔뜩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번 클릭 응원 매크로를 ‘재미삼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특정되기도 했다.
‘클릭 응원’을 통해 뭔가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애초에 IT업계에서 “놀랐다”고 할 정도로 접속 IP가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작을 노린 클릭 응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번 사건은 일부 커뮤니티에서 해당 결과를 문제삼으면서 알려졌다. 이후 국민의힘에서 넘겨받아 잇달아 ‘중국발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TF를 구성해 대응하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일파만파 커졌다.
여당은 본격적으로 ‘다음 때리기’에 나선 모양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0월 4일 페이스북에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론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데, 발본색원해서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의 ‘다음 때리기’는 익숙한 장면이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사태’ 이후 다음은 보수세력으로부터 “좌익”, “좌빨” 등의 오명을 얻었다. 다음이 개설한 온라인 여론광장인 ‘아고라’에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토론이 연일 열렸다. 아고라에 필명 ‘미네르바’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던 박대성씨는 검찰에 구속됐다가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당시 한남동에 있던 다음 사옥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아고라를 폐지하라는 극우·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 때는 다음, 네이버 등 포털 규제를 위해 연구기관을 통해 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나섰다가 ‘포털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2018년에는 조선일보 출신 기자를 고위 임원으로 영입하는 등 노력했지만 아고라는 결국 2019년 초 문을 닫았다. 지난 총선 및 대선 국면에서는 다음에서 제공하는 뉴스 댓글을 놓고 편향성 논란이 제기됐다. 올 6월부터는 24시간 동안만 댓글이 남아 있는 ‘타임톡’으로 체계를 완전히 개편했다. 댓글이 가져오는 사용자들의 재유입 효과가 분명함에도 과감하게 이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스포츠팀 응원을 위해 만든 ‘클릭 응원’도 닫았다. 여론 수렴 공간으로서 다음의 역할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중이다.
카카오에서 다음 등 ‘포털 비즈’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0% 이하다. 국내 포털·검색 시장에서도 네이버·구글에 이어 3위까지 밀렸고, 시장 점유율 추정치도 5% 이하로 적다. 이에 반해 매번 편향성이나 규제 논란에 오르는 등 ‘리스크’는 여전히 크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여차하면 포털 사업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올봄에도 카카오가 포털 비즈 사업부를 별도로 독립시키자 매각설이 돌았다. 카카오는 이를 부인한다. 다음 관계자는 “확인 결과 비로그인 방식의 서비스는 ‘티스토리’ 내 게시물에 대한 ‘좋아요’ 및 ‘댓글’ 외에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서비스 전반에서 어뷰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힘 “이참에 댓글 국적 표기법 도입” 공세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당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본인이 올 1월 발의한 일명 ‘댓글 국적 표기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이참에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T업계에선 실효성 부족과 역차별 우려 등을 들어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으로 판단된 상황에서 단지 IP 주소만으로 국적을 따져 표기하는 게 무슨 실효성이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사업자와의 역차별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마련돼 실행될 경우 업체들 모두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고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금액의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난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도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도입되면서 규제를 받던 국내 동영상 플랫폼 사업자들이 줄줄이 몰락했다. 반면 해외 사업자라는 이유로 규제를 받지 않던 유튜브는 급격히 시장을 확대했고, 현재는 점유율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국내에서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됐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포털이나 플랫폼이 제공하는 뉴스나 미디어의 편향성이 가져오는 각종 부작용을 고려할 때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이는 업계에서 자율적인 조치를 통해서 해야 하는 부분이지 정부나 정치세력이 관여한다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앞으로 클릭 응원 수사를 맡은 경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만약 별 의미 없는 ‘매크로질’로 드러난다면 여당과 정부는 다음(카카오)에 사과라도 해야 할 판이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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